"박근혜하고 이상득이하고 싸우는 거 아닌교?"
휴일인 12일 경북 경주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성건동 중앙시장의 한 국밥집에 들어가 4ㆍ29 재보선에 대해 운을 뗐더니 60대 주인이 불쑥 한마디했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측근인 같은 당 정종복 후보와 친박 성향 무소속 정수성 후보 간 충돌의 정치적 배경을 들춰낸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는 이랬다. "표 받고 나면 나 몰라라 하는 건 일마나 절마나 다 똑같을 거 아이가. 난 투표 안 할끼다."
실제로 아직까지는 선거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시민들이 많았다. 경주역 앞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최모(42ㆍ여)씨는 "선거한다고 힘쓰지 말고 경제나 좀 살리라 하소"라며 돌아섰고, 화랑로 노상에서 과일을 파는 박모(39)씨도 "땡볕에서 뼈빠지게 일해 봐야 아들 학원도 몬 보내는데 투표는 무슨…"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종복 후보와 정수성 후보의 경우 얼굴은 몰라도 이름 석자는 거의 아는 듯했다. 민주당 채종한 후보나 자유선진당 이채관 후보의 이름을 얘기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18대 총선에서 당선됐던 김일윤 전 의원의 부인 이순자 후보에 대해선 "남편이 억울하게 의원직을 잃었다"는 동정론도 일부 있어 보였다.
특히 최근 불거진 정수성 후보에 대한 친이 측의 사퇴 종용 논란은 선거 얘길 할 때면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이 대목에선 후보들에 대한 호ㆍ불호도 드러났고,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민심도 언뜻언뜻 엿보였다. 32년째 개인택시를 운전한다는 김모(68)씨는 "정 장군 주저 앉힐라꼬 아무리 해도 박근혜가 한번만 오면 바람이 불끼다"라며 정수성 후보의 우위를 점쳤다. 반면 용강동의 한 대형할인매장에서 만난 주부 정모(51)씨는 "경제 살리라 카믄 힘 있는 여당 후보가 돼야 하는 거 아닌교"라며 정종복 후보를 두둔했다.
각 후보 측도 이 같은 기류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경주 발전의 멍에를 지고…'라는 감성적 구호를 내건 정종복 후보는 가는 곳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직접 설득하고 경북지사와 경주시장과도 협력해서 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받아내겠다"고 강조한다. 집권여당의 후보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반면 정수성 후보 측은 박 전 대표의 안보특보 경력을 최대한 부각시킨다. 선거사무소 외벽의 대형 현수막에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명함에도 어김없이 박 전 대표와 함께 있는 사진이 들어 있다. '박근혜님의 대권가도, 그 날의 서막을 경주에서'라는 구호도 내걸었다.
좀처럼 동선이 겹치지 않는 두 후보가 이날은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린 경주실내체육관 앞에서 마주쳤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 대신 멀찍이서 경쟁적으로 시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 뿐이었다. 두 후보와 차례로 악수를 한 뒤 체육관에 들어선 동천동 주민 정모(45)씨는 "내 사실은 한나라당 당원인데 누가 당선돼도 참 깝깝시럽게 됐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13일 경주에선 또 다시 고질병인 친이ㆍ친박 갈등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정종복 후보 사무소에서 개최된 최고위원회의에 친박계 의원들이 다수 불참한 것. 전날 시청에 근무한다는 황성동의 한 주민은 이런 얘기를 했다. "여당이 집안 싸움이나 해싸니까 나라 꼴이 이 모냥 아닌교."
경주=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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