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에서 하(夏) 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왕(桀王)과 함께 폭군의 전형으로 불리는 상(商) 나라의 주왕(紂王)이 실제로는 문무를 겸비한 명군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찬반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역사 기록은 주왕이 술로 가득 채운 연못 주변의 나무를 비단으로 휘감은 뒤 고기를 매달아 놓고, 간언하는 신하들을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은 구리기둥 위를 걷게 하는 형벌을 내려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지형(烙之刑)' 등의 고사성어를 낳게 하는 등 학정을 일삼다 결국 애첩 달기(己)에 빠져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혼군(昏君)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상하이 푸단(復旦) 대학의 첸원중(錢文忠) 교수가 4일 중앙TV의 인기 역사문화 강연 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에서 기존의 역사적 기술이 왜곡됐다며 주왕에 대해 정반대의 평가를 내려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중국에선 역사인물에 대한 재조명 바람이 일면서 기존의 학설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는데 쳰 교수의 '주왕 명군론'이 이에 기름을 부었다.
성도만보(成都晩報)와 싱가포르 연합조보 인터넷판이 13일 전한 바에 따르면 첸 교수는 백가강단에서 맡은 <삼자경(三字經)> 의 해석 제22강좌에 나와 이 같은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삼자경(三字經)>
첸 교수는 은(殷) 나라로도 부르는 상 나라 역사를 다루면서 "보통 주왕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황음무도하고 포악한 군왕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그는 문무를 함께 갖추고 공훈도 탁월한 제왕"이라고 밝혔다.
그는 "주왕을 지난 2000년 동안 폭군의 대명사로 꼽았으나 이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모함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청자와 네티즌들은 '사기ㆍ은본기(史記·殷本紀)'에 기술된 '주왕이 술을 좋아하고 음란을 즐겼으며 남의 여자를 탐하고 주지육림을 만들어 벌거벗은 남녀가 서로 쫓아다니게 했다'는 등을 증거로 논박을 가했다.
적지 않은 이들은 첸 교수의 새로운 해석이 시류에 영합하는 작태라는 비난까지 퍼부으면서 중앙TV와 포털 사이트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하지만 첸 교수는 자신의 주장 모두 역사적 문헌에 근거한 것이라며 일부 지적처럼 인기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첸 교수는 12일 성도만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폭군이란 지칭이 주왕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인용한 '사기' 등의 내용은 주왕에 관한 극히 일부분의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사기에는 주왕이 자질이 뛰어나고 민첩하며 총명하고 힘이 장사이며 족히 간언을 알아듣고 말로써 자신의 허물을 감출 수 있다는 등의 내용도 적혀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첸 교수는 주왕이 산둥(山東) 지역과 화이허(淮河) 하류, 양쯔강 유역을 개척하고 중원(中原) 문명을 전파하는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주왕은 일련의 개혁조치를 단행하고 신(神)권에 반대했으며 노예 세습제를 타파하고 새 인재들을 과감히 발탁하는 등 훌륭한 업적이 많다고 첸 교수는 역사적 논거를 들며 설명했다.
첸 교수는 "역사상 주왕의 진면목은 당당한 체격에 용맹한 군주로 능력도 무궁무진한 군주였다. 그를 왜곡해서 인식하게 된 이유는 모두 소설과 TV 드라마 때문이다. 세간의 잘못된 선입관이 대중매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며 "학자로서 이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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