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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13) 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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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13) 공전

입력
2009.04.15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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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전 - 정재학

나무 둘레에 나이테를 그리며 돌고 있던 나는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늙은 성벽이 되었다

지구는 공전한다고 한다. 어찌 안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손 안에 든 요요를 바라보는 것과 달리, 지구의 이 거대한 회전을 직접 목격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기적이 찾아온다. 숲길을 걷는 나그네는 나무에 새겨진 장엄한 나이테들을 발견하리라.

나무의 둘레를 바깥으로 넓히며 일년마다 하나씩 선명하게 회전하고 있는 나이테들! 지구는 자기와 똑같은 보폭을 지닌 나무 한 그루 안에 자신의 회전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자리에 서서 나이테로 회전하는 나무처럼, 우리 모두는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자리에서 안간힘을 쓰며 회전한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십 년… 그것은 지루하고 소득 없는 공회전인가? 아니면 저 오래된 나무들이 그렇듯 거대한 밀도로 자신을 꽉 채우는 성장인가? 타인이 기대올 때 그 큰 어깨를 내어주는 나무 같은 자의 멋진 성장 말이다….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정재학 1974년 생. 1996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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