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을 책임져야 할 경찰이 되레 치안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9일 '강희락 호' 출범 이후 한 달여 동안 경찰이 근무 도중 성인오락실에서 강도 짓을 하고, 압수한 유사석유제품을 시중에 유통하는가 하면, 성매매 업주에 뇌물을 받고 단속정보를 제공했다 적발돼 물의를 빚었다. 급기야 12일엔 서울 도심 경찰서 유치장에 구속 수감 중이던 피의자 2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기강이 땅에 떨어졌다"는 비판과 함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수뇌부 공백으로 인사가 지연되며 생긴 '인사 피로증'이 전방위 치안 부재의 주범으로 꼽힌다. 올해 경찰 인사는 경찰청장에 내정됐던 김석기 전 서울청장이 용산 참사로 낙마한 탓에 수뇌부, 간부, 하위직 인사가 모두 예년보다 2~3개월씩 늦춰졌다.
이에 따라 간부급의 승진 눈치보기도 덩달아 길어져 '집안 단속'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한다", "안한다" 오락가락하다 결국 생색내기에 그친 '강남 물갈이' 인사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의 한 경찰서 팀장은 "인사로 워낙 오랫동안 술렁이다 보니 부하 직원들이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붕 뜬 상태"라고 했다.
경찰의 '샐러리맨화'도 치안 약화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주5일제가 대표적. 지구대에서는 지난해 기존 3교대 근무를 4교대로 바꾼 뒤 주 3일만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인력은 그대로인데 억지로 주5일을 맞추다 보니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피의자 탈출 사건이 일어난 남대문서에서도 원래 9명이 3교대로 유치장 경비를 하는데, 당일 1명이 대휴를 가 2명만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경찰서 경무과장은 "순경 시보를 뗀 지 1년도 안돼 월급 총액이 많은 지구대나 주5일이 보장되는 외사 파트로 가겠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 경장은 "직원들 사이에 유치장 갈 때 (승진) 공부하러 간다고 한다"면서 "인사 때면 편한 부서로 가려는 직원들이 꽤 있는데 이번 남대문서 건도 이런 상황에서 느슨하게 근무하다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확산된 경찰 밑바닥의 냉소주의도 심상치 않다. 한 경사는 "현 정부가 공권력을 바로 세우겠다고 했지만 결국 경찰은 시위 막는데 동원돼 피만 흘리다 욕밖에 더 먹었느냐"며 "열심히 일해봤자 소용 없다는 분위기가 퍼져있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감찰 기능 강화와 함께 '전문가'로서 경찰의 자부심을 높일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남대문서장 직위해제
한편 경찰청은 13일 유치장 탈주사건의 책임을 물어 김기용 남대문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고 후임에 현재섭 국회경비대장(총경)을 임명했다. 새 국회경비대장에는 남택화 강원경찰청 경무과장이 임명됐다.
장재용 기자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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