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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영화같은 삶' 신상옥감독 특별전

입력
2009.04.15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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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관 시네마테크KFA. 구한말 헤이그 밀사의 의분에 찬 활약상을 담은 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가 스크린 위에서 명멸했다.

어지간한 영화광들에게도 낯선 이름일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1984년 만들어진 북한 영화다. '체스꼬슬로벤스꼬'(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북한 최초로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했고,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서 심사위원 특별 감독상을 받으며 북한 영화 사상 첫 해외 영화제 수상작이 됐다.

일제강점기 '임자 없는 나룻배'로 조선 민중을 울렸던 인민배우 문예봉의 이름이 크레딧에 올라있고, 일본어 자막이 내내 깔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몇 가지 특이성을 제외하면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무명 배우들이 나오는, 오래된 한국 영화라 해도 의심할 사람이 거의 없을 듯 했다. 김일성ㆍ김정일 부자에 대한 과도한 충성 서약은 물론이고 그 흔한 정치적 구호조차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총지휘'라는 명칭으로 메가폰을 잡은 고 신상옥(1926~2006) 감독의 북한 데뷔작이다. 신 감독은 그저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설파하려다 뜻이 꺾이고 마는 이준 열사 일행의 행적을 뚝심 있게 보여줄 뿐이다.

납북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도 정치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신 감독의 열정이 스크린에 배어난다.

이날 신 감독의 북한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관객은 30명 남짓이었다. 모두들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남기고 객석을 찾아 입장했다. 국가정보원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분단의 현실은 정치색 없는 영화에도 엄존했다.

남북한을 오가며 영화에 대한 사랑만으로 삶을 지탱했던 신 감독의 뜨거운 열정이 새삼스러웠다. 객석 맨 뒤 중앙에 앉아 행사 진행을 유심히 살펴보는 그의 아내 최은희가 그의 분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신 감독이 남한과 북한, 미국서 만든 영화 15편과 함께 19일까지 상영된다. 특별전의 이름은 역시나 '사랑 사랑 영화 사랑'이다.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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