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인줄 알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아차' 싶을 것이다. 영화정보를 꼼꼼히 훑고서야 지갑을 여는 영민한 관객 중에서도 꽤 당황할 사람이 있을 듯 하다.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노잉'은 많은 관객이 기대하는 것처럼 한 영웅이 절멸 위기에 몰린 지구를 구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기말인 1998년 소행성의 지구충돌이라는 동일 소재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진행 시켰던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를 떠올린다면 '노잉'의 결말은 '딥 임팩트'에 가깝다.
그러나 '노잉'은 '딥 임팩트'와 달리 초자연적인 현상에 집중, 미스터리 효과를 극대화 하면서 여타의 SF영화와 다른 지점을 확보해낸다. 일부 관객은 실소를 금하지 못하고, 또 다른 일부는 열렬한 지지를 보낼 대목이다.
영화는 묵시록과 다름없다. 1959년 한 초등학교 학생이 숫자로 가득한 종이 한 장을 타임 캡슐에 넣고, 50년 뒤 이를 MIT 교수인 존(니컬러스 케이지)이 해석하면서 영화는 서스펜스를 엮어 나간다. 테드는 숫자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목도하고, 인류 절멸의 순간이 바싹 다가왔음을 알아챈다.
영화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해결사로 예상됐던 존의 무기력한 활약상을 보여주면서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강조한다. 여객기가 추락하고, 지하철 객차가 뒤집어지는 화끈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면서도 영화의 화법은 기묘하게도 B급 영화의 틀을 따른다.
예측불허의 전개와 마무리가 놀라울 정도의 낯선 풍경을 제공하지만 배신감을 느낄 관객도 적지 않을 듯 하다. 특히 가벼운 팝콘무비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본전 생각이 강하게 들 것이다.
미국의 연예주간지 '할리우드 리포터'의 최근호는 '노잉' 관련 기사에서 케이지는 명백한 미스캐스팅이라고 지적했다. "개봉 첫 주 이후 급격하게 수입이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놓았다.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라는, 내용물과 다른 겉포장을 냉소적으로 비꼰 것이다. '다크 시티'와 '아이, 로봇' 등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 15일 개봉, 12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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