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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5대 1의 추억

입력
2009.04.15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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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안보리가 결의안 채택 대신 의장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 문제가 일단락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희망을 여지 없이 무너뜨렸다. 6자회담에 "다시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합의에도 더 이상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불능화 작업이 진행 중이던 핵 시설의 원상 복구에 착수하고, 폐연료봉을 재처리한다며 소동을 피울 장면이 벌써 눈에 선하다.

북한이 로켓 문제를 유엔 안보리가 논의만 해도 가만 안 있겠다고 공언했던 터라 반발은 예상했지만 강도가 너무 세다. 북핵 폐기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의 틀로 기대를 모았던 6자회담이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 북한의 서슬로 봐서는 회담 틀 자체가 완전히 와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1994년 북핵 1차 위기 때 미국의 영변 폭격을 막았노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무용담이 다 신경이 쓰인다.

중대한 기로에 처한 6자회담

물론 관련국들이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6자회담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다. 미국은 북미 양자회담의 산물인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실패를 되풀이 하는 것을 원치 않고,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누리는 이익이 크다. 미국이 일본의 추동을 받아 안보리 의장성명 발표를 주도했지만 북한에 대가를 치르게 하기보다는 6자회담 복귀 압박에 무게가 실린 감이 있다.

당초 결의안은 물론 의장성명 채택도 반대했던 중국이 입장을 바꾼 것은 미국의 속뜻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이 에너지와 식량 지원을 통해 북한에 갖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이를 지렛대로 압력을 가한다면 북한도 마냥 버티기는 어렵다. 미국이 고위급 특사 파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북미 양자협상에 나서고 중국이 뒷받침하면 냉각기를 거쳐 6자회담 재개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그러나 북한 내부로 눈을 돌리면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엊그제 공식 출범한 김정일 3기 체제의 성격과 지향점부터 심상치 않다. 국방위원회 강화와 선군정치 강조 등 전반적으로 체제의 경직성과 폐쇄성이 더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대남 관계도 강경대결 기조가 두드러지고, 대외관계 개선이나 개혁개방을 고려하는 조짐은 찾아보기 어렵다. 체제의 유연성이 훨씬 떨어졌다는 의미다. 김정일 3기 체제의 이런 성격이 보다 분명해지면 설사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미국과 소극적인 주고받기 이상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남북관계 경색의 장기화도 불가피하다.

북한 변화 이끌 5자 협력 절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이 당분간 6자회담을 전면 부정하고 핵 활동을 재개해도 핵 능력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당장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무기급 플루토늄량을 늘릴 수 있지만 영변 원자로가 사실상 해체 상태여서 큰 의미가 없다. 플루토늄을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원자로를 새로 건설해야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5MW 원자로가 계속 돌아가던 6자회담 2단계 이전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당시 6자회담에서 5 대 1의 구도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이 북한에 대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졌기에 가능했던 구도다. 이 구도에서 5개국은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도 얻을 게 많았고 결코 손해 보는 거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로켓발사 문제를 둘러싸고는 한ㆍ미ㆍ일 대 북ㆍ중ㆍ러의 3 대 3 구도가 형성됐다. 이 구도 아래의 한반도는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현실주의 세력균형의 대결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남북의 평화공존이나 동북아평화체제 구축은 물론 북한의 변화도 이끌어 내기도 어렵다. 북한을 6자회담으로 되돌리려면 5 대 1 구도의 회복부터 서둘러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 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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