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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임기제 군주정'을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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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임기제 군주정'을 끝내자

입력
2009.04.15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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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년 1월 30일 화요일, 을씨년스런 오후였다. 수많은 군중의 눈은 검게 장식된 처형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도끼가 국왕의 목 위에 떨어지자 군중의 입에서는 짧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의 처형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던 모든 전통과 선례는 단절되었다. 공화정이 시작된 것이다.

청교도 시인 존 밀튼은 혁명의 대의를 분명히 하고 반혁명세력의 준동에 쐐기를 박기 위해 국왕 처형을 정당화 하는 팸플릿 <왕과 행정관의 재직조건> 을 써서 발표했다. 밀튼은 이 글 덕분에 크롬웰 정부의 '외교부장관'에 임명되어 10년 동안 청교도혁명의 대의를 내외에 천명하는 논객으로 활약한다.

인간성 타락시키는 권력

그러나 잉글랜드의 공화정 실험은 11년 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660년 5월 왕정복고와 더불어 공화정은 숨을 거뒀다. 공화정 논객으로 전 유럽적인 명성을 얻은 존 밀튼은 1660년 2월 잉글랜드 공화국을 위한 최후변론이라 할 <자유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한 쉬운 길> 을 출간했다. 스튜어트 왕정 복고를 저지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였다. 그는 임박한 파멸로부터 공화정을 구원하겠다는 강렬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해 4월 밀튼은 <자유공화국…> 을 수정해 재판을 간행했다. 초판을 간행한지 2개월만의 일이었고, 찰스 2세가 복귀하기까지 2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미 왕정복고의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크롬웰 지지자들은 이미 대부분 적에게 투항했거나 서둘러 항복하는 중이었다. 공화정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이 긴박한 시기에 반(反)군주제를 그토록 노골적으로 천명한 인물은 밀튼 밖에 없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밀튼이 이토록 목숨을 걸고 군주정을 반대하고 공화정을 옹호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는 국왕 주변에서 사치와 방종, 그리고 인간을 굴종적으로 만드는 저열한 생활방식 밖에는 볼 수 없었다. 귀족들은 공공의 이익을 뒷전으로 밀어둔 채 왕 앞에 직언을 하기는커녕 납작 엎드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고, 그 대가로 권력의 단맛을 즐겼다. 요컨대 군주정은 인간성을 타락시킨다는 것이 밀튼의 결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자금수수 문제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하지만 어디 그뿐인가.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퇴임 뒤 본인 또는 친인척 비리로 검찰 신세를 짓지 않은 대통령이 없다. 전두환ㆍ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반란과 비자금 조성으로 실형을 받았고, 아들이나 친인척은 비리로 감옥에 갔다. 김영삼ㆍ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치자금과 대북송금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그 아들과 측근들이 감옥살이를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친인척이나 실세들은 검찰 수사를 받았고 예외 없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이유는 현행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은 국가수반과 행정수반을 겸하는 점에서 미국 대통령과 유사하지만 이보다 더 막강하다. 미국에서 주(州)에 귀속된 실질적 내치 행정권과 하원에 귀속된 비상대권을 다 보유하기 때문이다.

'공화정 확립'을 논의할 때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독식한다. 말이 공화정이지 사실상 '임기제 군주정'이다. 그것도 절대군주정에 가깝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고 한 19세기 영국 역사가 액튼의 말처럼 정권이 바뀌면 친인척과 측근들은 줄줄이 감옥 행이다.

이런 제도와 풍토라면 이명박 정부도 4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이미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구속됐다. BBK 수사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서로 편의를 봐주기로 했다는 '형님 밀약설'도 나오고 있다. '임기제 군주정'의 음습한 전통과 단절하고 공화정을 확립할 특단의 대책을 논의해야 할 때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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