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내게 어울리는 역할이 생긴다면 다시 무대로 돌아가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여배우로 살고 싶습니다."
1978년 납북됐다가 86년 극적으로 탈출했던 원로배우 최은희(83)씨가 13일 오전 KBS1 TV '아침마당'에 출연해 영화 인생과 북한에서의 생활, 남편이었던 고 신상옥 감독과의 인연에 대해 털어놓았다.
때마침 내달 중순 개막하는 제6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신 감독의 1961년 작품인 '연산군'의 디지털 복원판이 상영된다는 소식(본보 13일자 33면)이 전해진 참이었다.
최씨는 북한으로 끌려갔던 배경과 그곳에서 신 감독과 다시 부부의 연을 맺은 사연을 소개했다.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후 78년 1월 안양예술학교 이사장으로 지내고 있을 때 홍콩에서 자매결연을 맺자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더 넓은 곳에서 학생들을 공부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혼자 떠났는데 그게 북한의 함정이었죠. 저를 배에 태운 사람들이 '김일성 장군님 품으로 간다'고 말해 너무 놀라 기절을 했어요. 납북된 후 6개월 동안은 밥을 못 먹을 정도였죠."
최씨는 하지만 북한에서의 삶이 생각했던 것만큼 끔찍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항상 저를 '최 선생'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고 생일엔 집으로 초대해 부인과 아들 김정남을 소개하기도 했어요. 5년 동안 농사 짓고 바느질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던 중 1983년 납북되어 온 신상옥 감독과 재회했죠."
신 감독과 재결합한 최씨는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등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고 85년에는 영화 '소금'으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 86년 베를린영화제 참석차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한 최씨와 신 감독은 미 대사관으로 탈출해 극적인 귀국에 성공했다.
"일본 기자의 도움으로 택시를 타고 미 대사관으로 달리던 중 길이 막혀 차에서 내려 대사관으로 뛰어가 겨우 탈출할 수 있었어요. 최씨는 "아직도 언제 북으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 속에 살고 있다"며 "위층에서 소리만 나도 가슴을 졸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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