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핫바지론'이 다시 등장했다. 최근 국회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에 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자유선진당에선 이회창 총재까지 발끈하고 나섰다. 그는 9일 "세종시 폐기 운운은 15대 때의 충청 핫바지론을 연상시킨다"고 일갈했다.'배신','기망'이라는 단어도 동원됐다. 13,14년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 총재가 충청권 푸대접을 한마디로 압축하는'핫바지론'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이 총재가 격해진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패하자 지난해 제18대 총선 때엔 충청 맹주를 목표로 충남 홍성ㆍ예산 지역구로 퇴각, 지역정서에 기댄 이 총재의 지역차별 질타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는 15대 때 서울 송파갑에서 첫 의원 배지를 단 뒤 16대 비례대표를 거쳤고 세 차례나 대선후보로 나선 중앙 정치의 거물이다. 그럼에도 이 총재는 결국 지역거점 확보의 깃발을 올렸고 결과는 '이회창의 부활, 신(新)삼국시대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이 총재의 지역주의가 권력추구의 미련에서 비롯됐다면 지금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집권세력이 저지르는 지역주의는 권력을 '소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이'끼리끼리만'권력을 나누며 벌이고 있는 잔치의 중심에는 편중된 인사(人事)가 있다. 청와대내 인사업무 요직을 장악한 TK(대구ㆍ경북) 세력들은 안팎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잃어버린 세월'동안 억눌러온 TK의 허기증을 푸느라 여념이 없는 듯 하다. 이들은 먹이가 될 자리를 찾아 정부 부처 뿐만 아니라 정부 산하단체, 공기업은 물론 민간 기업까지 훑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만의 잔치가 외려 안쓰러운 것은 그렇게 물불을 안 가리는데도 현 정부를 명실상부한 TK정권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빈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대구의 박근혜 전 대표가 TK 중심축을 이루며 확고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TK 판도는 왜소할 수밖에 없다. 반쪽도 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와 연대하거나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에 인색한 것을 보면 집권세력의 지역적 경도는 차기 정권 창출이나 퇴임이후 평가, 후계 구도를 위한 포석 등과는 거의 무관하다. 오로지 '승자 독식'을 위한 유용한 수단일 뿐이다. 이런 막무가내는 결국 차기 대선국면에서 박 전 대표를 도와주는,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대선 이후 악화하고 있는 지역주의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무소속 출마와 민주당 내분으로 돌아오기 어려운 다리를 건너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정 전 장관에게는 '집토끼'를 단속하고 진지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을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 뿐 아니라 2012년 총선, 대선까지도 결국 DJ,YS,JP 시절에 버금가는 지역구도 선거가 될 것이라는 판단도 했음 직하다.
한나라당 박 전 대표에게 대적할 인물이 없거나, 또 지역구도로는 차기 대선에서 이기기 어려운 경우에도 제1야당을 유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지역정서를 부추기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과연 그런 정치적 계산에서 지역회귀를 고집한 것일까. 호남 불출마를 공언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그 와중에 지역기반을 잃고 말 것인가.
지역주의를 비판하기는커녕 지역주의로 맞서는 것이 정치 현실일 수는 있다. 그러나 백보를 양보해도 지역구도를 고착화하는 현실을 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분명한 퇴행이다.
고태성 정치부 차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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