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시조 아담 스미스는 '보이는 손'을 따라가지 말고 '보이지 않는 손'을 따라 행동할 때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은 가격을 말하므로, 상인들은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물건을 팔고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물건을 사야 한다는 뜻이다. 그
렇다면 '보이는 손'은 무엇인가. 가격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라는 뜻이다. 사실 형편이 어려운 동네 할머니에게는 사과를 좀 싸게 드리고, 형편이 넉넉해 보이는 아저씨에게는 조금 돈을 더 받고 파는 것을 나쁘다고만 하기 힘들다.
연고와 의리 집착한 잘못
명색이 경제학을 한다는 나도 사실 '보이지 않는 손'보다는 '보이는 손'을 따르는 경우가 있다. 교수랍시고 책을 써 달라는 출판사들이 더러 있는데, 내가 '보이지 않는 손'의 맹목적 신봉자라면 출판사 규모와 인세 만을 따져 계약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책을 내는 곳은 친한 고등학교 동기동창이 운영하는 그리 크지 않은 출판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장이 친구일 뿐 아니라 직원 중에도 후배들이 있기 때문에 정이 간다.
그러나 친구의 출판사에서 주로 책을 내는 것은 이런 인정상의 이유만은 아니다. 출판사들이 내게 책을 쓰자고 할 때에는 대개 열심히 내 책을 밀어 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약속은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광고비를 얼마 나 쓰겠다고 명시한 것이 아니고, 막상 책을 쓰고 보면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다.
반면 고등학교 친구인 출판사 사장은 내가 쓴 책을 홀대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계약을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존경하는 아담 스미스께서 뭐라고 하셨건 간에, 사람을 믿어야지 가격이나 계약서를 믿는 바보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을 하나 내는 데도 고등학교 동문 따지고 의리와 믿음 운운하게 되는데,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다 보면 아마 훨씬 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될 것 같다. 역대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문제가 불거진 것도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전혀 놀랄 일은 아니라는 느낌은 나만의 것이 아닐 듯싶다. 일을 하다 보면 꼭 누구를 챙겨주려 해서가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을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내가 도와 준 친구가 나를 돕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내가 책을 낸 이후로 그 출판사를 하는 친구와 밥이라도 먹으면 어느새 돈은 항상 출판사 사장 친구가 내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뭐 가난한 교수가 무슨 돈이 있어서 밥을 사냐?", 이러면서 말이다. 대통령이 조금 도움을 받는 것도 뭐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내 경우에는 내가 쓴 책에 대해서 밥을 얻어먹는 것이다. 반면 대통령이나 공무원이 돈을 받는 것은 국민이 밤새워 가며 쓴 책의 인세를 엉뚱한 놈이 가로채는 것과 다름없다. 서커스에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조련사가 가져간다더니, 정말로 우리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이 재주를 부려서 번 돈을 슬쩍슬쩍 빼내 간 셈이다. 아무리 미련하고 눈치 없는 곰이라도 화가 나기 마련이다.
미련한 국민도 화가 난다
일을 하다 보면 원칙이나 객관적 기준대로만 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믿는 사람들끼리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이런 믿음의 징표로 뇌물이나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원래 나쁜 짓을 같이 하거나 고생을 같이 하다 보면 믿음도 생기고 동료애도 생긴다고 한다.
앞으로 믿음과 동료애를 쌓고 싶을 때는 뇌물이나 선물을 주고받는 대신 함께 일주일간 해병대에 입소해서 지옥 훈련을 받으며 고생을 하든지, 노상방뇨나 수박 서리를 같이하는 방법을 이용해 줄 것을 현재와 미래의 대통령들에게 강력히 권한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