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의장국 태국의 주최로 휴양도시 파타야에서 11, 12일 열릴 예정이던 제12차 '아세안+3(한국ㆍ중국ㆍ일본)'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태국 반정부 시위대의 회의장 난입으로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시위로 국제 행사가 무산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일로 아시아 15개국 정상은 11일 오후 모두 자국으로 출국했으며 태국은 국가 이미지가 손상된 것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씻을 수 없는 망신을 당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3개국이 참여하는 '아세안+3' 정상회의와 인도 호주 뉴질랜드까지 16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EAS는 당초 지난해 12월 태국 수도 방콕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탁신 치나왓(60) 전 총리에 반대하는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이끄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면서 개최 일정과 장소가 여섯 차례 변경됐고 결국 계획보다 4개월 늦게 개최가 확정돼 참가국 정상이 파타야로 모여들었지만 탁신 전 총리 지지단체인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의 과격시위로 회의가 또다시 무산됐다.
AP통신에 따르면 붉은 티셔츠 차림의 UDD 회원 1,000여명은 11일 오후 정상회의장인 로열클리프 호텔로 난입해 호텔 유리창을 깨고 회의장과 미디어센터에 진입했다.
태국 정부는 사태가 심상치 않자 정상들의 신변안전을 위해 11일 파타야에 비상사태를 선포한데 이어 12일에는 방콕과 주변 5개 주(州)로 비상사태 선포를 확대했다.
비상사태 선포 직후 정상들은 헬기와 스피드보트 등을 타고 회의장을 급히 빠져 나왔으며 태국 정부는 일부 정상을 군 비행장으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시위대는 정상회의 취소가 발표되자 승리를 선언하면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12일 아세안-유엔 정상회의 참석차 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아세안 및 관련 정상회의가 연기되고 저의 참석도 미뤄져 유감"이라고 발표했다.
태국에서는 최근 15개월 동안 4명의 총리가 거쳐갔지만 모두 정국 정상화에 실패했으며 지난해 12월 취임한 아피시트 웨차치와(45) 총리도 이번 사태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실제로 아피시트 총리가 12일 방콕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흥분한 시위대 수백 명이 내무부 청사 안으로 난입해 총리 차량의 유리창을 부수고 시내에 배치된 장갑차 2대를 탈취하는 등 과격시위를 벌였다.
정상회의 취소 직후 태국 정가에서는 군부가 아피시트 총리 정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정부가 시위대 요구대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번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UDD는 탁신 전 총리의 측근인 자투폰 프롬판 의원 등이 이끄는 친(親)탁신 단체로 탁신 전 총리의 고향인 치앙마이 등 태국 북동부 지방에서 인기가 높다.
UDD는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탁신계 신당인 국민의힘(PPP) 등 집권 3당 해체명령을 내린 데 반발해 시위를 시작했고 의사당과 정부청사를 봉쇄하며 수개월째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태국 정가는 탁신 전 총리 지지파와 반대파로 극명하게 갈려 있으며 양대세력은 국민에게 어느 한쪽 편을 들 것을 강권하고 있어 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실제로 태국 정부는 12일 탁신계 인사들이 설립한 위성방송국 DTV의 송출을 중단했고 이에 맞서 탁신 전 총리는 곧바로 농성장에 국제전화를 걸어 "당국이 폭력을 사용하면 즉시 고국으로 돌아가 이를 막겠다"고 말했다.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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