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로부터 국민들을 지키려면 반드시 필요하다."(경찰), "범죄자 DNA를 강제 채취해 보관하는 것은 과도한 인권침해다."(인권관련 시민단체)
경찰이 강력범의 유전자 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유전자은행법'(유전자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이 법안이 "강력범을 검거하는데 특효약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인권관련 시민단체들은 "지나치게 인권을 억압하는 조치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입법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경찰청은 12일 "국가가 수사단계에서 구속된 피의자와 형이 확정된 수형자의 유전자 정보를 취득해 관리하는 유전자은행법을 이르면 다음 달 입법예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살인, 강도, 강간ㆍ추행, 방화, 절도, 약취ㆍ유인, 체포ㆍ감금, 상습폭력, 조직폭력, 마약, 청소년 대상 성범죄 등 11대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및 수형자가 대상이다.
법안은 구강 점막을 채취하거나 간이 채혈 등 최소한의 절차를 거쳐 유전자 감식 시료를 수집하되, 피의자나 수형자가 유전자 채취를 거부하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 받아 강제로 채취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현장에 머리카락이나 혈흔 등 'DNA 지푸라기' 하나만 떨어져도 범죄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전자 수사망'을 구축하겠다는 시도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은 그러나 수형인이 재심에서 무죄, 면소, 공소 기각 판결을 받거나 구속 피의자가 불기소 처분을 받을 경우 유전자 정보를 삭제하고, 사망했을 때도 관련 정보를 폐기토록 했다.
경찰은 이 법안이 시행되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 강력범 검거는 물론 억울한 누명을 쓴 피의자의 무죄를 밝히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연수 국립과학연구소 유전자분석과장은 "유전자 은행법은 범인에게 '잡힐 수 있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범죄 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며 "특히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처럼 동일인에 의한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나 연쇄범죄 행각을 막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지나치게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높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미 죄값을 치른 범죄자의 DNA를 강제 채취하는 행위는 과도한 인권침해일 뿐이며, 형이 확정되지도 않은 구속 피의자 유전자 정보를 별도 관리하려는 것도 수사 편의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이 국민정서를 내세워 주민번호와 지문에 이어 또다른 거대한 국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도"라며 "절도범까지 DNA 채취대상에 포함시키는 식으로 합법적으로 생체 정보 수집을 허용할 경우 국가에 의한 불법 정보 수집은 더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수형자가 불기소되면 유전자 정보를 삭제키로 한 부분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인권운동사랑방 관계자는 "수사 기관에서 이미 확보한 유전자 정보를 쉽게 포기할 리 없고 신원확인 외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며 "정부는 통제 위주의 사후 범죄 처리에 주력할 게 아니라 초동 수사와 예방 치안을 강화하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경찰청은 29일 유전자은행법 공청회를 열기로 해 법안을 반대하는 인권단체들과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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