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만든 지유샤 판 중학교용 역사교과서가 마침내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했다. 새역모의 역사교과서는 목차와 본문 내용이 현재 사용 중인 <새로운 역사교과서ㆍ개정판> (후소샤)과 거의 다르지 않다. 이 <신편ㆍ새로운 역사교과서> (지유샤)는 책 제목에서도 금세 알 수 있듯 후소샤 판 교과서의 개정판이라고 볼 수 있다. 현행 교과서의 체제와 내용을 그대로 답습한 서적이 어떻게 새삼스럽게 검정 대상이 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신편ㆍ새로운> 새로운>
왜곡교과서 채택 높일 속셈
새역모가 기존 후소샤 판과 별도의 역사교과서를 만들게 된 것은 그들이 교과서에 담고자 한 교육이념과 역사인식의 특별한 변화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조직의 내홍으로 인한 분열의 결과로 보인다. 교과서 채택률 저조로 인한 내부 대립의 결과 새역모는 2001년과 2005년 자신들의 교과서를 출판했던 후소샤와 결별했다.
새역모는 후소샤가 기존의 새역모 교과서를 2011년까지만 출판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임의 존재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를 표절한 수준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새 교과서를 다시 만들어 낸 것이다.
새역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 정부는 왜 이런 문제투성이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킨 것일까. 1982년 일본이 교과서 왜곡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고조되자 일본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과서 검정기준에 교과서 기술이 이웃나라와의 우호를 해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근린제국'조항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이번 검정결과는 이 근린제국 조항이 유명무실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정부는 새역모 교과서에 대해 2001년에는 137곳, 2005년에는 124곳, 2009년에는 136곳이나 수정을 요구했으니 나름대로 노력한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검정 절차를 거쳐 심하게 편향되거나 왜곡된 내용이 일부 개선된 부분도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개별 사실만을 문제 삼는 검정으로는 교과서의 역사왜곡 자체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문부과학성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2012년 교과서 전면개정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이 정도 수준의 역사왜곡은 인정하겠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어 우려를 안겨준다.
2010년과 2011년 2년밖에 사용하지 못할 새 교과서, 그것도 현재 사용 중인 교과서의 복사판과 같은 내용의 교과서를 만들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일본 극우 지식인들의 책략에 휘말릴 가능성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의 이념에 비추어도 별 의미가 없는 새 교과서를 발간한 속셈이 일부러 주변국가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일본의 교육주권에 대한 침해로 선전함으로써 우익 교과서 채택률을 높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그 의도를 따져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웃과 '동반자 관계' 다지길
새역모 교과서의 2005년 채택률은 0.39%에 지나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역사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이 성과를 거둔 것을 평가하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는 교과서로는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올바른 일본인을 만들 수 없고 일본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기를 수도 없다는 건전한 상식을 일본사회가 갖고 있고, 이를 발휘한 때문으로 볼 만하다.
올해 교과서 채택에서도 일본사회의 이런 건전한 상식이 다시 한번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그 것이 일본이 경제 선진국으로서만 아니라 세계의 문화 선진국으로 평가 받고, 이웃 나라들과 함께 선언한 미래의 동반자 관계에 제대로 살을 붙이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이훈 동북아역사재단 제1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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