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이어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도의 현대미술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17일 개막해 6월 7일까지 이어지는 '인도현대미술-세 번째 눈을 떠라' 전은 '인도의 데미안 허스트'로 불리는 수보드 굽타(45)를 비롯한 작가 27명의 설치와 영상, 사진, 회화 110여점으로 꾸며진다. 그간 인도 미술이 간간히 소개되긴 했지만 이렇게 대대적인 규모는 처음이다.
무엇보다 작가 대부분이 1970년대생으로 젊다. 그래서 과거의 화려한 문명국 인도가 아닌, 혼란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현재의 인도를 보여주고 있다. 전시 제목의 '세 번째 눈'이란 인도 여성의 두 눈 사이에 붙이는 물방울 모양의 전통 장식 '빈디'를 가리킨다. 빈디는 지혜와 본질을 간파하는 제3의 눈을 상징하기도 한다.
김남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전시 준비를 위해 인도 작가들과 만나고 작품을 보면서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찾아 헤매던 국제 미술계가 왜 인도에 이끌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도가 수천년에 걸쳐 일구어온 정신적 힘이 현대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충돌하면서 현대미술의 강력한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의 출발점은 중앙홀에 드러누운 거대한 코끼리다. 길이가 450㎝에 달하는 암컷 코끼리가 에너지를 다 소진한 듯 쓰러져있다. 바르티 케르의 설치작 '피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말한다'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코끼리의 가죽은 수컷 정자 모양의 빈디로 가득 덮여있다. 인도 사회의 여성 문제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레나 사이니 칼라트의 '동의어'는 고무도장으로 만들어졌다. 도장의 밑면에는 인도의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도장들이 모여 인도인의 얼굴 형상으로 나타난다. 지티쉬 칼라트의 '죽음의 격차'는 1루피가 가지는 각기 다른 가치를 통해 빈부 격차의 문제를 말한다.
커다란 1루피 동전 뒤로 각도에 따라 다른 텍스트가 보이는 렌티큘러 액자가 걸려있다. 전화 한 통을 거는 데 드는 별 것 아닌 1루피의 이야기와, 또 그 1루피 때문에 자살한 소녀의 이야기가 겹쳐보인다.
비반 순다람은 버려진 코카콜라 캔으로 도시의 형상을 만들어 쉴새없는 도시의 소비를 표현했고, 투크랄&타그라의 작품들은 현재 인도 젊은이들이 갈망하는 화려한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세계를 열광시키는 작가 수보드 굽타의 작품들은 인도의 일상적인 부엌에서 나왔다. 스테인레스 스틸 주전자를 마구 쌓아놓은 작품은 현재 인도인들의 삶뿐 아니라 끊임없이 쌓여가는 신에 대한 봉헌물 속에 담긴 욕망을 함께 보여준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뷸렛'은 영국 식민지 시절 들어온 옛 오토바이 기종을 놋쇠로 재현한 설치작으로, 인도 현대사를 생각하게 만든다. 전시를 닫는 것은 굽타가 만든 황금색 '문'이다. 이 문 뒤에 무엇이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관람객들의 몫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일본 모리미술관이 주최해 현대 인도 미술을 객관적으로 조망한 전시로 평가받았던 '찰로(가자)! 인디아'를 들여온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직접 기획한 전시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규모나 수준 면에서 모두 놓치기 아까운 전시다. 5월 중에는 금요일마다 인도의 종교, 역사, 신화, 철학, 미술을 주제로 한 강연회가 이어지고, 토요일에는 인도 전통공연과 영화 상영 등도 진행된다. 입장료 성인 5,000원. (02)2188-6114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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