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람난 사람들을 위한 꽃구경 말고 또 한 가지 좋은 구경거리를 소개할까 한다.
여기저기 축제들이 넘쳐 나지만, 역시 구경거리 중 으뜸은 영화구경 이라 하겠다. '영화인이라 어쩔 수 없군!' 하고 이해 해 주시기 바란다. 올 한해 서울에서만 무려 8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첫 번째 소개할 영화제는 4월 9일부터 8일간 열리는 전 세계 여성 영화인들의 축제인 서울
국제여성영화제이다. 경제 불황 속에 공연ㆍ 예술계를 위한 기업의 후원이나 협찬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물론 지난 10여 년간 각종 영화제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이 빈번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영화제들은 그 특성을 나름대로 잘 살려온 영화제들이 아닌가 한다.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서울 국제여성영화제도 바로 그런 영화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전 세계에 여성영화제를 하는 나라들은 많지가 않다.
23개국에서 초청된 영화 105편을 상영하니 양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내용도 다채롭다. 새로운 물결의 여성 감독의 영화들, 여성 노동 문제를 다룬 작품, 단편영화, 다큐멘터리 등 프로그램만 보아도 다양한 관람 체험이 기대된다. 하지만 내심 걱정도 된다. 화창한 봄 날씨 어두운 극장이 경쟁해야 하니 승부는 이미 결정 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단 한번 와 보시라. 그리고 놀라지 마시라! 정말 다양한 층의 관객들이 모두들 열심히 영화를 보고 난 뒤 감독과 제작자, 배우들과 진지하고 유쾌한 대화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열기의 현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제를 가보면 감독들은 간혹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내 영화를 이렇게 잘 이해하는 관객들이 있고, 적극적으로 영화를 지지해 주는 관객들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는 것 때문이다. 다 유쾌한 체험이다.
뒤이은 영화제는 솔직히 좋은 영화 관람보다도 맛 집 순례 때문에 안 갈 수 없는 영화제, 전주 국제영화제이다. 전주 영화제의 프로그램도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작품들이 많이 상영되는 영화제인데, 영화 보는 사이사이에 먹을 거리를 생각하고, 또 뒤풀이에 나올 음식들을 기대하느라 어서 저녁이 되었으면 하고 영화를 본다.
해장국을 먹기 위해서 일부러(?) 과음을 하기도 한다. 정통 콩나물 국밥집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 과음을 안 하겠는가. 어느 해인가는 그날 꼭 봐야 할 영화 때문이 아니라 예정된 맛 집 순례가 턱없이 모자라 1박을 더한 적도 있었다. 이 봄날 영화도 즐기고 봄의 향취도 즐기고 입도 즐거운 영화제로는 전 세계 어떤 영화제와도 견줄 수가 없다. 요즘말로 '강추'인 영화제이다.
전국에 이런 저런 축제가 난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각종 영화제의 출발도 지방자치단체의 생색 내기용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그 이후 10여 년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잘 버텨온(?) 영화제들도 있다.
문화관광체육부에서 영화제들을 위한 지원을 줄이거나 없앤다는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영화제를 평가하는 기준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정체성이 없는 영화제들은 저절로 소멸될 것이니 잘되고 있는 영화제들이 앞으로 10년, 또 그 이상의 전통을 지니는 영화제가 될 수 있도록 관객과 행정가들이 잘 돌보고 가꾸어 주었으면 한다.
이미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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