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떡이랑 빵을 좋아한다고 해서 조금 싸왔어요.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엄마 이경순(39)씨가 간식거리부터 내놓으며 분위기를 잡는다. 큰 아들 진호(15ㆍ성수중3)군도 질세라 한껏 아양을 떤다.
"형, 지갑에 넣고 다니는 '금잔디'(드라마 '꽃보다 남자' 여주인공) 사진 줘봐요. 이제 '꽃남'도 끝났는데 사진 구겨지면 어떡해. 브로치에 넣어서 형 옷에 달아줄게."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게 내리쬔 11일 한강 둔치 잠실선착장. '한강나들이 가족자원봉사' 행사에 참여한 '꽃미남 가족' 박종환(43)씨네와 지적장애 2급 김일호(39)씨의 두 번째 만남은 시작부터 화기애애했다.
일호씨는 간식 봉투에서 얼른 떡과 빵을 집어들더니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보름 전 예비모임 때는 서먹해 하던 진호, 진석(13ㆍ성수중1) 형제는 자신들처럼 '꽃남'에 열광하는 일호씨를 스스럼없이 '형'이라 불렀다.
한강유람선을 타고 잠실어도(魚道)를 따라 물고기를 구경하는 등 5시간 가량의 나들이 내내, 형제는 일호씨 양 옆에 붙어 서서 위험한 곳에 가지 못하도록 챙기기도 했다.
이경순씨는 "아이들이 자기 중심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해 걱정하던 중 이번 프로그램에 신청하게 됐다"면서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조금씩 바뀌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재활원의 무연고 장애인과 짝을 맺은 가족봉사단이 함께 참여하는 '한강나들이' 행사가 첫 발을 디딘 것은 2005년 9월. 개인 또는 조직 차원보다 오래 지속되고 깊이도 더한 가족단위 봉사를 통해 가족 없는 장애인들에게 혈연 대신 정(情)으로 엮인 가족 사랑을 느끼게 해주자는 취지다.
서로를 '짝궁'이라 부르는 가족봉사단과 무연고 장애인은 매년 봄, 가을 5~6회 한강축제와 철새탐조, 유람선 타기, 자전거 타기 등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정을 쌓아가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6기 가족봉사단에 뽑혀 첫 나들이에 나선 열 가족과 그들의 짝궁, 해를 넘겨 만남을 이어온 1~5기 가족들까지 모두 150여명이 참여했다. 다음달에는 강서습지생태공원 나들이, 6월에도 선유도 생태탐방이 계획돼 있다.
첫 발을 뗐던 1기 짝궁들의 교감은 남다르다. 열 가족 중 일곱 가족이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인데, 지체장애2급 이봉수(39)씨와 맺어진 '파랑새 가족' 이상수(47)씨네는 매년 나들이를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이씨 부부는 특히 주원(13ㆍ동북중1), 주호(12ㆍ둔촌초6)군 형제와 함께 1년에 꼭 한 번씩 이씨가 사는 은평재활원을 방문한다.
부인 양순비(37)씨는 "재활원에서 1년에 한 번 가족초청행사를 여는 날엔 봉수씨가 특히 쓸쓸해 할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하려 애쓴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봉사단이 계기가 돼 한국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도서녹음 봉사도 하고 있다"면서 "마음만 있으면 봉사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강나들이 가족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워낙 인기가 높아 참가 가족을 추첨을 통해 선발하고 있다. 이번 6기에도 열 가족 모집에 여든 다섯 가족이 신청, 무려 8.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자녀들과 함께 평생을 이어갈 수 있는 가족단위 봉사라는 취지도 좋지만, 1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게 사전ㆍ사후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짝꿍을 맺어줄 때부터 세심한 배려가 이뤄진다. 일례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의 경우 이동할 때 도움이 필요하므로 아버지가 젊고 건강한 가족과 연결시켜준다. 또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예비모임을 갖는다.
비장애인이 잘 모르는 장애인의 특성과 '짝궁'의 건강상태 등을 미리 파악해 첫 만남에서 느끼는 어색함과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것. 6기 가족들도 지난달 28일 예비모임을 가졌다.
그 덕분에 기수별로 9개월 가량의 공식 활동이 끝난 뒤에도 상당수 가족이 짝궁 장애인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다빈(12)ㆍ예빈(8) 남매 이름을 따 '투빈이네'란 별칭으로 활동하는 4기 김정헌씨 가족은 이날도 짝궁인 임영천(지적장애2급)씨와 함께 한강나들이에 참여했으며, 다음달에는 야구장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다.
한강사업본부의 자원봉사 담당 이명화씨는 "1기 '솔바라기 가족'의 경우 이 프로그램 참여 후 어머니가 사회복지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 대학에 편입하기도 했다"며 "가족봉사가 새로운 봉사 문화로 자리잡기까지 프로그램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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