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아침 먹고 출발해 전남 여수서 점심, 다시 서울서 저녁을 먹곤 합니다.(왕복 약 800㎞)" "지리산 노고단(해발 1,507m)에서 산 밑에까지 9㎞의 꼬불거리는 길을 15분만에 내달려 보기도 하죠."
완성도 높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차가)주저앉을 때까지 달린다'는 테스트 드라이버들의 이야기다. 도로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만들어 놓고 차량을 테스트하는 사람들로, 입사 후 지금까지 '개미 한 마리 밟아 죽이지 않은' 운전의 달인이자 '소리만 듣고도 수리견적서를 낸다'는 자동차 도사들이다. 르노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 차량상품성 및 내구성팀 김영관 차장, 송영돈 대리, 임동현 사원을 만났다.
▦ 테스트 드라이버?
새로운 자동차 한 대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 3년. 개발비로만 3,000억~4,000억원이 들어가는 대작업이다.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여기서 하는 일은 자동차가 출시(양산)되기 전까지 동적 성능에 대한 모든 평가를 하고, 미흡한 점을 개선하는 것이다.
승차감은 물론 엔진, 핸들링, 브레이크 등 자동차 성능과 직결되는 수 천 가지의 시험이 이들 손을 거친다. 이 시험에 동원됐다가 폐차장 신세를 지는 테스트 차량만 300대 이상. 완벽한 차 한대를 만들기 위해 기계적, 물리적, 전자적 지식이 총동원되니 달인이 아니고선 배겨내지 못한다.
차량 운행 중 생길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연출해서 시험해야 하는 탓에 이 일은 "영화 찍는 일"(김)이고, 완벽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테스트를 반복해야 하는 까닭에 "자기 자신과 싸우는 수행"(송)에 비유된다. 또 수많은 종류의 자동차를 원 없이 몰아 볼 수 있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멋진 일"(임)이기도 하다.
시험차량 한 대의 가격은 약 2억원. 2만여 개의 부품을 모두 별도 주문해 생산하는 탓에 양산 차량 가격의 10배에 달한다. 결국 폐차장으로 끌려가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 테스트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이를 아낄 생각은 없다. "시험차를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시험을 할수록 더 완벽한 차로 태어날 수 있다"(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리콜)로 막지 않기 위해선 이만한 방법이 없다"(송)는 게 이들의 소신이다. 1,000여 가지의 테스트를 마친 이들 달인의 손 끝에서 '세상에 나가도 좋다' 뜻의 'OK사인'이 떨어져야 비로소 양산이 시작된다. 이들의 시험이 그만큼 중요하단 이야기다.
해외 수출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탓에 테스트는 국내 지형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부 캐나다, 호주, 중동 등 다양한 기후와 자연 조건의 지역에서도 실시된다. 이 때문에 테스트 드라이버는 1년 중 절반 가량을 해외에서 보내기도 한다. 국ㆍ내외서 검은 위장막을 두르고 도로를 달리는 차를 목격했다면 그 차가 바로 테스트를 위해 생산된 시험 차량이고, 운전자들이 바로 테스트 드라이버들이다. 디자인이 성능 못지않은 평가 요소가 된 요즘, 위장막은 연구소 밖으로 나오는 시험 차량들의 필수 복장이다.
▦ 어떻게 자동차 도사 되나
테스트 드라이버의 일은 우선 자동차와 친해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동차와 한 몸이 됐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메이커별 수십 종의 자동차를 운전한다. 대형버스 운전면허 보유자라 하더라도 이곳에서 운전대를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년. 생명과 안전에 연관된 일이라 엄격한 군기는 물론이고 '찬물법칙'이 적용되는 탓이다.
이론교육을 받고 테스트 드라이버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야 그나마 운전연습을 시작할 수 있다. 다양한 자동차의 성격과 반응을 이해하고, 사고 대처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2년 이상 이어진다.
이 다음 단계의 일은 빗길주행, 급커브, 급정거, 급발진, 고속주행 중 차선 급변경 시험 등을 통해 개선점을 찾아내는 것. 이 단계를 거쳐야 스스로 주행 조건을 만든 뒤 차를 몰고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쯤 되면 자동차를 컨트롤 하는 능력은 '신의 수준'이 된다. 그야말로 '테스트 드라이버'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인데 여기까지는 6, 7년이 걸린다. 하지만 차량 테스트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최고속 주행, 전복시험은 자동차와 혼연일체가 된 10년차 이상의 베테랑 테스트 드라이버들에게나 주어지는 일이다.
▦ 달인도 운다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부품으로 조립된 시험 차량인데다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세워 테스트하는 탓에 사고는 부지기수다. 그래서 길 위에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자동차의 달인들도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조금 전까지 같이 웃던 동료가 부상을 당하는가 하면 저 세상의 사람이 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병원으로 퇴근(병문안ㆍ조문)을 한다"고 했을까.
하는 일이 동료 직원 가족들에게 비밀에 부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 오늘 뭐했어? 하는 질문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송) 가족과 같이 있어도 어느 틈에 고독해지는 거다. 삶의 무게가 느껴져 보험 가입이라도 할라치면 세상으로부터도 멀어진다. "직업을 알아차린 보험설계사가 우리 같은 사람은 웃돈을 줘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김)
달인이 울 때가 또 있다. "분명히 좀 더 나은 차를 만들 수 있는데 (가격인상 문제로) 그만 시험하라는 상부 지시가 떨어지는 날이 그런 날이죠."(송) "사람이 차를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 차가 사람을 테스트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울죠."(김) 엔진과 바퀴만 있으면 굴러가던 시절은 저물고, 첨단 전자 장비들이 자동차에 결합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고3 아들보다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할 정도"(김)로 몸과 머리가 고된 일이다.
이런 이들이지만 달인은 달인이다. 입사 후 '일반도로'에서 사고를 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사고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송)이고 "이른바 '차 낙법'으로 불리는 비법을 전수 받기 때문"(임)이다. 무엇보다도 "자동차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일반도로에서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김)다. 사고를 예측하고, 피하는 방법을 아는 이들이 욕심까지 내려놓았으니 사고가 있을 리 만무하다.
모든 걸 섭렵한 이들의 말은 짧고 굵은 법. 운전을 잘하는 비법 하나 알려달라고 조르자 한 마디 했다. "뒤에 부모님을 태웠다고 생각하고 운전을 한번 해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달인이 됩니다."
▦ '운전의 달인'이 전하는 '운전 낙법'
-Q:전방의 무엇을 들이받아야 한다면
A: 핸들과 브레이크 조작을 섞어 차를 돌린 뒤 트렁크로 부딪혀라. 등받이 만큼 든든한 안전장구가 없다.
-Q: 불가피하게 정면으로 출동해야 한다면
A: 어깨를 지나는 벨트를 잡아 위로 잡아당겨라. 10㎝만 당겨도 최소한 에어백과 전방유리 충돌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Q:전복사고가 예상될 때는
A: 두 팔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운전대 아래로 몸을 숙여라. 웬만해서 운전대 아래로 지붕이 내려 앉지 않는다.
-Q: 평상시 충돌사고 대응력을 높이려면
A: (자동변속기의 경우) 평소 왼발을 비스듬히 만들어진 풋 레스트에 올리는 습관을 만들어라. 안전벨트 못지않은 효과를 낸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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