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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정동영 대 정세균

입력
2009.04.13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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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29 재ㆍ보선이 제법 볼 만해졌다. 풍화하지 않는 정치지형으로 보아 처음에는 볼거리라곤 없었다. 인천 부평 을 지역의 여야 대결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잠시 있었지만, 이내 다른 관심사에 덮여버렸다. 대신 새로운 구경거리로 떠오른 게 여야의 집안싸움이다.

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하다 보면, 으레 탈락자들의 반발이 따른다. 그 결과 공천을 받은 후보와 무소속으로 출마한 공천 탈락자의 대결은 부지기수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번처럼 미리 무소속 출마 카드를 흔들며 공천을 압박하는 예가 두드러진 선거는 드물다.

경북 경주에서 '친박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정수성 예비역 육군대장은 한나라당이 공천한 정종복 전 의원과 치열한 대결을 예고했다. '불출마 종용' 논란까지 겹친 친이ㆍ친박 진영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결과가 어찌 되든 두 진영의 정서적 괴리는 한결 커질 전망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집안싸움은 전북 전주 덕진에서 벌어지고 있다. 어제 민주당이 김근식 경남대 교수의 공천을 공식 확정한 데 이어,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민주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최종 선언했다. 그 동안 정 전 장관 진영과 민주당 지도부의 신경전에서 예고됐던 수순 그대로다. 15대 총선 당시 정 전 장관에게 전국 최다득표 기록을 안기며 화려한 정계 데뷔를 시켜 준 지역구 민심으로 보아 승패 자체보다는 득표율이 오히려 관심거리다.

'반 똘똘이'와 '반 바보'대립

이 싸움의 주역은 정 전 장관이지만 어제부터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분명한 상대역으로 등장했다. 김 교수의 공천을 최종 확인하면서 정 대표는 자신의 '진정성'을 부각하기 위해 19대 총선에서 현재의 지역구인 전북 진안ㆍ무주ㆍ장수ㆍ임실에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지금이야말로 당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자세, 큰일을 위해 잠시 참는 자세, 단합을 위해 충돌을 자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정 전 장관에게 곧바로 칼을 겨누었다.

그는 6개월 후의 수도권 보궐선거에서 적극적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이미 위험한 싸움을 피하기로 작정한 정 전 장관을 돌려세울 수는 없었다. 정 전 장관은 "잠시 민주당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 할 것"이라며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손을 내밀었는데 설마 뿌리치랴 했던 것이 현실이 됐다"는 비난만 돌려주었다.

이로써 명분과 실리의 다툼이라는 겉모습에 가려졌던 정 전 장관과 정 대표의 정면 승부라는 싸움의 뼈대가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다. 정 전 장관이 한 발 앞서가긴 했지만, 15대 총선으로 나란히 정계에 발을 디딘 두 사람은 늘 물밑의 경쟁자였다. 지도력 스타일은 달라도 성공적으로 당을 이끈 경험도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을 계기로 처음으로 반 걸음 앞선 정 대표가 현재의 리드를 순순히 포기할 리가 없었다. 충분히 사전 조정이 가능했을 공천 문제를 '당의 분열' 가능성이 거론될 지경으로 끌고 온 데서 양측의 속내가 엿보인다.

언뜻 정치적 명분보다는 실익을 챙기고 나선 정 전 장관과 명분에 사로잡힌 끝에 공천 논란을 부르고 끝내는 지역구 포기까지 선언한 정 대표의 대결은 '똑똑이 대 바보' 구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꺼풀만 까보면 '반 똘똘이'와 '반 바보'의 대결일 뿐이다.

명분ㆍ실익 놓친 고집 다툼

정 전 장관이 미국에서 전주 덕진 출마를 작정하고 돌아올 때는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에까지 이른 전국적 정치인 이미지에 대한 미련은 버려 마땅했다. 개인적 미련이야 남겠지만 정치현실로 보아 얼마든지 대선후보 및 당권 포기 약속을 정 대표에게 전할 수 있었다.

그것이 불발한 데서 아직 그의 현실인식은 '반 똘똘이' 에 그친다. 지역구 포기를 선언한 정 대표의 '바보성'도 폭넓은 선택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에서, 뻔히 떨어질 줄 알면서 부산 출마를 거듭한 '바보 노무현'은 물론이고, 공천 논란을 피하려고 아예 출마를 포기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에 비하면 반쪽이다.

서로 자존심과 고집을 내세워 벌인 어정쩡한 대결로 당이 내분에 휘말린 데다 국민의 눈길도 따뜻하지 않다. 명분이나 실익을 따질 정치 공간만 좁아지고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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