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쿳시(J M Coetzee)는 내가 좋아하는 외국 작가 중의 한 명이다. 번역된 그의 소설은 다 읽었고 작가 인터뷰가 실린 이라는 평론집도 읽었다. 몸이 아파 열이 나거나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난 늘 그의 소설 <추락> 을 집어 들고 침대로 가 방문을 잠근다. 추락>
루리는 50대 이혼남으로 대학에서 바이런을 비롯한 낭만주의 시를 강의한다. 그러던 어느 날 토니 모리슨과 엘리스 워커를 읽었다는 어린 제자 멜라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 사랑은 성폭행이 되고 그는 학교징계위원회에 선다. 학교에서 쫓겨난 그는 흑인 지역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사는 레즈비언 딸 루시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추락은 끝없이 이어진다. 흑인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루시가 흑인들의 표적이 되어 강간을 당하고 임신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좋은 소설들이 그렇듯이 이 소설도 여러 층위가 겹쳐져 있다. 대학교수가 학생을 농락한 걸로 마무리된 루리의 연애 사건은 흑인에게 정권이 이양되어 권력 지형도가 바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새로운 현실과 겹친다.
또 스캔들을 피해 이탈리아로 도망간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실제 스토리와도 겹친다. 소설 후반부에 루리와 딸 루시 사이에 오가는 통렬한 반박은 대단하다. 그리고 대학교수에서 '개처럼' 추락한 루리의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인용된 바이런의 시구를 읽을 때면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한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도통한 서양 도사들의 소설 운용은 늘 나를 절망시킨다. 최근에 나온 <소설의 발생> 이란 책을 읽으면 소설이란 장르가 유럽 문화의 산물이라는 걸 알게 될 거고, 그러면 패배감이 치유될 수 있을까 생각도 한다. 그런데 이런 때 내가 하는 처방은 따로 있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절에 소설을 썼던 여자 작가들은 어떻게 현실을 견뎠을까. 김명순, 백신애, 지하련 같은 내 할머니 세대의 소설들을 자꾸만 읽는 것이다. 이게 제대로 된 처방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소설의>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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