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훈 지음/예담 발행ㆍ568쪽ㆍ1만5,000원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선언했던 20세기초 신비평 이론가들이 들으면 불만스런 소리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작품의 비밀은 작가에게 있다고 믿는다. 작품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작가 탐구에 공을 들인 문학비평이나 문학기사들이 더 호소력이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일 테다.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는 시인 원재훈(48ㆍ사진)씨가 만난 문인들의 이야기다. 지은이는 정현종,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성석제, 신경숙, 공지영, 김연수씨 등 대표적 시인, 소설가 21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문단의 한 풍경을 인상적으로 소묘해낸다. 대상 작가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바탕으로 작업실에서, 카페에서, 술집에서 그들을 만나 그 일상과 인생의 이면에 대해 꼼꼼하고 속깊은 이야기를 끌어내고, 이를 밑바탕으로 '인간 OOO' 그리고 '작가 OOO'의 핵심으로 치달아 들어가는 저자의 솜씨는 말 그대로 능수능란하다. 나는>
"나는 작가의 어린 시절을 반드시 물어보고 꼭 쓴다"는 공언처럼 원씨가 애용하는 방법은 작가의 유년 체험을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가령 만화와 무협지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한 개구쟁이 소년 시절의 추억을 끌어내며 '이야기꾼' 성석제씨 소설의 원동력을 꿰뚫어보고, 지방 출신이지만 예쁜 구두와 원피스를 입고 자랐던 한 소녀의 유복한 어린 시절을 엿봄으로써 은희경씨 소설의 도회적 감각과 낙천성을 파악하는 식이다.
인터뷰이들에 대한 인터뷰어 원씨의 감정 이입은 특유의 시적인 언어들로 꽃핀다. 그것은 읽는 이의 감성을 자주 건드린다. 시인 김선우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걸어나가며 "일어나 걸어가는데 '내 다리뼈로 퉁소를 만들어줘'라는 김선우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나지막이 슬픈 피리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그는 적는다. 소설가 윤대녕씨를 만나기 전 그의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 를 읽고는 이렇게 쓴다.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책을 읽다 손으로 마음이 전해져 연필심이 촉촉해졌다." 제비를>
예리한 관찰과 정교한 취재, 깊은 성찰과 감각적인 문장이 결합된 이 책은 '좋은 인터뷰란 이런 것'이라는 모델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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