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자금 관리인인 정승영 정산개발 대표가 정상문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찾았다. 정 대표는 "대통령께 전해 달라"며 직원들 명의로 환전해 온 100만 달러(약 10억원)가 담긴 돈 가방을 정 전 비서관에게 건넸다. 정 전 비서관은 곧 바로 노 전 대통령의 관저를 찾아 달러의 '주인'에게 이를 통째로 넘겼다.
돈 거래 상황이 이렇게 밝혀지자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 "권양숙 여사가 빚을 갚기 위해 받았다"는 노 전 대통령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왜 굳이 달러로 받았는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자녀의 유학비용으로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검찰은 오히려 박 회장이 정ㆍ관계 인사들에게 불법 자금을 줄 때 주로 '달러'를 이용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액면가에 비해) 부피가 작고 자금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 바 있다. 100만 달러 역시 불법성이 있는 '검은 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또 돈이 든 가방째 전달했다는 것도 부정한 거래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단순히 채무변제 목적이라면 박 회장이 직접 갚을 수도 있고, 설사 돈을 받아서 갚더라도 이 같은 방법을 택해야만 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당시 이들은 차용증도 주고받지 않았다. 검찰이 10억원에 대해 '빌린 돈'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다.
돈을 마련하는 과정도 '검은 거래'를 의심케 한다. 베트남과 중국 등에 현지 공장을 운영하며 국제거래를 빈번히 하는 박 회장도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직원들 명의로 환전을 했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검찰은 1인당 환전 한도가 1만달러인 점을 감안할 때 박 회장이 100만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적어도 100명의 직원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외환당국의 눈길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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