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 아내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밝히자 "노 대통령마저?"라고 놀라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 배신감을 느꼈다는 사람들도 있다. 기득권과 정치권의 부패를 그렇게 질타하면서 혼자 깨끗한 척 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는 개탄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0% 깨끗할 거라고 믿은 사람들이 많을까. "노무현 씨마저?" 라는 개탄은 순수한 경악이 아니라 비아냥이 더 많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검은 돈이든 흰 돈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대는 정치권, 돈 먹고 감옥 갔다 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 정치권, 대통령은 사면해 주고 유권자들은 다시 표를 찍어 주니 얼마든지 죽었다 살아날 수 있는 정치의 세계에서 노무현 씨가 무슨 도덕군자라고 백설처럼 깨끗하겠는가.
"노무현마저?"라는 비아냥
그는 재임 중의 언행에서 도덕군자의 면모를 보여 준 적도 없다. 그는 법을 경시하고, 무례하고, 궤변을 일삼고, 반성에 인색한 모습을 임기 내내 보여 주었다. 자기 자신에게 도덕적으로 엄격한 사람, 돈 문제에도 깨끗한 사람일 것이라는 신뢰감을 준 적이 없다.
더구나 그의 측근에는 '패밀리'로 불리는 사업가들이 있었다. 사방에 돈을 뿌려대는 그 사업가들이 '주군'(主君)과 그 가족에게만 절대로 돈을 건네지 않았다면 얼마나 이상한가. 마피아 냄새가 나는 '패밀리'란 용어가 그들 입에서 나올 때 벌써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을 믿지 말고 법과 제도를 믿어야 한다. 노무현 아니라 그 누구도 정치부패가 일상화한 이런 풍토에서는 깨끗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우리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패다. 오랜 세월에 걸쳐 '부패와의 전쟁'을 수 없이 부르짖었으면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그 전쟁이 항상 정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전쟁에서 정치를 제거하고 법에만 충실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과 그 가족들은 대부분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반란과 비자금 조성으로 실형을 받았고, 아들이나 친인척들이 비리로 감옥에 갔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치자금과 대북송금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그 아들들과 측근들이 옥살이를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친인척이나 실세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고 예외 없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무현 정권도 이 악순환을 끊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이라는 도덕적인 우월감에 빠져 과거 집권층의 부패를 준열하게 꾸짖었지만 그들도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권력에 취한 나머지 끼리끼리 '패밀리' 안에서 주고받는 것이 무슨 죄냐는 식으로 부패에 무감각해졌다. 보수는 이 사태를 '진보의 도덕적 몰락'이라고 비난하지만, 보수도 지금 큰소리칠 상황이 아니다. 줄줄이 쇠고랑을 차던 과거 보수 정권의 비리를 국민은 잊지 않고 있다.
'권력의 시녀'였던 과거를 씻고
정권만 바뀌면 전 정권이 부패로 심판을 받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검찰에 마지막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검찰이 그 일을 못해낸다면 우리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 검찰이 전 정권에 대한 보복수사나 표적수사를 한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지만, 정권이 바뀐 후에라도 비리를 철저하게 파헤쳐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위상이 확실해진다면 대통령 임기 중에라도 그 가족과 측근의 비리를 파헤치는 힘이 생길 것이다.
검찰은 지금 '수사의 장기화나 그로 인한 피로감'을 말할 때가 아니다. "검찰은 입이 없다"는 자세로 묵묵히 수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의 검찰'로 거듭남으로써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던 과거의 죄를 씻어야 한다. "검찰만이 희망이다"라고 말하기는 낯 간지럽다. 그러나 지금 다른 무엇에 기대하겠는가. 검찰은 시대가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를 다해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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