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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10> 외계인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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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10> 외계인 애인

입력
2009.04.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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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인 애인 - 서동욱

나 전설의 플라스틱 재벌은 가끔 손주들을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네 할미는 헌신적이었지 네 에미는 공부도 잘했지 남대문은 활활 잘 탔지 등등 이야기를 숨기기 위한 이야기를 뜬금없이 하고서, 비로소 낡은 휴대폰을 꺼내 외계에서 찾아왔던 애인의 문자를 읽어줄 것이다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겠어 내가 힘내라고 어깨라도 토닥여 줘야지요 매력 있어 이백 살 넘은 노파답지 않은 말투예요 영리한 첫째 손녀는 눈을 반짝이며 신이 날 것이다 고등학생 때였으니, 그래 정확히 할아버지보다 이백 살 많았단다 그리고 늘 하던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대목에 공을 들인다 피부가 정말 고왔어 합성수지를 특수하게 재활용한 살갗이라 이백 살 노파라고 믿을 수 없었단다 외계 과학의 승리였지 곧 이야기는 가장 슬픈 대목으로 들어서리라 지구의 바다를 눈에 담고 그녀가 동포를 생각하며 얼마나 흐느꼈는지, 수자원 담당 원로인 그녀가 왜 전쟁 중인 자기 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아이들은 정치 이야기도 꾹 참고 듣는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합성수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지 이 세상 모든 고무공을 만져 보았단다 간절하게, 그녀의 피부를 되찾고 싶었어 모텔을 전전하며 같이 끌어안고 누웠을 때의 그 합성수지 촉감을 잊을 수 없었단다 아버님 애들한테 그런 얘기를! 또 며느리에게 핀잔을 듣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밤거리 그만 헤매고 집으로 들어가요 그러곤 교보문고 옆에 길다란 광선 기둥을 만들며 그녀는 공중전화 부스를 운전하고 떠나갔지 이 세상 모든 플라스틱을 만져 보았단다 결국 난 합성수지 분야의 일인자가 되었고 군수산업에도 손을 대 인류는 두 번의 전쟁을 플라스틱 뿅망치로 치르면서 가벼운 타박상 환자만 남겼지 그러나 그 피부 감촉을 다시 느껴보지는 못했단다 지구의 합성수지 기술은 이백 년이 뒤떨어져, 그때까지는 누구도 살 수 없지 전쟁은 끝났을까? 그녀의 별은 해방되었나? 세상을 떠나 이백 년 우주를 배회하면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아예 시작도 말았더라면! … 그러면서 진작 잠든 손주들을 안아 침대에 누이고, 그룹 사옥 꼭대기로 올라가 송전탑에 걸린 은하수에 대고 네 이름을 부른다 세 번 부르니 별 이름 같다

내 애인도 혹시 외계인이 아닐까. 애인의 말투, 눈빛, 피부 감촉이 마술처럼 놀라워서 그(녀)가 다른 별에서 온 손님이라는 것을 알아챈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면 당신은 사랑에 빠진 자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연인의 이름을 간절하게 세 번 부르면 별 이름이 되는 아름다운 마법을 당신도 사용할 수 있다.

■ 김행숙(시인ㆍ강남대 국문과 교수)

ㆍ서동욱 1969년 생. 1995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랭보가 시쓰기를 그만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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