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을 비판해 온 김상곤(60) 한신대 교수가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됨으로써 이른바 'MB식 교육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7월 정부의 교육관을 지지하는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에 가까스로 재선돼 한숨을 돌렸으나, 전국에서 학교와 학생, 교사가 가장 많은 경기도 교육행정 수장 자리에 '반 MB'로 분류되는 김 당선자가 앉게 돼 정책 운영 방향 수정을 고민하는 상황을 맞을 전망이다.
김 당선자는 표면상 경기도라는 한정된 지역의 교육을 관장한다. 그렇지만 김 당선자에게 쏠린 시선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가 '이명박 교육 심판'을 전면에 내세워 승부수를 던졌고, 결국 승리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선거 기간 내내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현 정부 교육정책은 소수계층을 위한 특권교육일 뿐"이라는 게 일관된 소신이었다.
그러면서 경쟁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 전면적인 손질을 가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쟁자였던 김진춘(69) 현 교육감이 내세웠던 영어 공교육 강화, 특수목적고 확대 등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책과는 180도 달랐음은 물론이다.
교육계는 김 당선자의 향후 행보와 이로 인한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초ㆍ중등 교육 행정을 주도해온 경기도교육청의 비중과 그의 진보적인 성향을 고려할 때 현 정부 초ㆍ중등 교육정책에 반기를 들 소지가 다분하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전국 시ㆍ도교육감협의회의 파행 가능성을 점치는 전망도 있다. 협의회는 지난해 1월 출범 이후 역사교과서 선정 개입,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행 등 논란을 빚은 주요 사안마다 정부와 보조를 맞추며 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김 당선자는 현안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며 차별화를 시도할 게 분명해 보인다.
당장 교육과학기술부가 상반기 중 전국에 30곳을 지정할 예정인 자율형사립고(자율고) 문제가 김 당선자의 정책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시험대로 여겨진다. 김 당선자 주변에서는 자율고 지정권한이 교육감에게 있는 만큼 특권 교육에 반대하는 그가 자율고를 거부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특목고에 대한 과도한 예산 지원으로 경기도 공교육이 죽어가고 있다.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는 현행 수준으로 유지ㆍ동결하겠다"고 누누이 밝힌 점이 이런 전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찬반 논란이 거센 '일제고사'와 관련해서도 정부와 충돌할 개연성이 높다. 그는 "전국단위 학력 평가는 교육자치 측면에서 강제성이 있다"며 표집평가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김 당선자에게도 '아킬레스 건'은 있다. 1년2개월에 불과한 임기와 예산이다. 한 학급 학생수를 25명 이하로 줄이겠다는'혁신학교' 운영 계획과 무상급식, 아침급식 제공 등 주요 공약들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해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미 올해 예산이 편성된 상황에서 김 당선자가 공약을 집행하기에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자칫 무리수를 두다간 보수진영의 반발 등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엄민용 전국교직원노조 대변인은 "김 당선자가 차기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번 임기 동안은 경기 교육의 방향과 기조 등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할 밑그림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이삭 기자
■ 김상곤 당선자 "합리적 교원평가제 도입 찬성…전교조와 등치는 부적절"
첫 민선 경기도교육감이 된 김상곤(59ㆍ한신대교수) 당선자는 당선 첫날인 9일부터 급식현장을 참관하고 방과 후 공부방에서 학부모와 간담회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민선 교육감 중 진보성향 인사로는 첫 테이프를 끊은 김 당선자로부터 무한경쟁으로 요약되는 MB식 교육에 대한 개혁안을 들어봤다.
- 앞으로 경기도 교육행정을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인가.
"일단 기구 현황 파악 이후 판단할 문제지만 앉아서 하는 행정이 아니라 움직이는 행정을 펼칠 생각이다. 또 관료주의적 행정에서 탈피해 모두가 참여하는 개방형 교육행정을 도입할 생각이다."
- 공교육 강화 의지에 유권자들의 지지가 있었다. 복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과밀학급 과대학교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일례로 학급 당 25명, 전체 5,6학급 규모의 작은 학교(혁신학교)를 세워 학교 중심교육을 펼치겠다. 성공사례가 될 것으로 믿는다."
- 당선자의 입장과 달리 단체장들은 특목고를 선호한다. 어떻게 조율할 생각인가.
"특목고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목적과 달리 왜곡된 특목고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특목고가 설립 목적에 충실해질 때까지 특목고를 더 이상 늘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
- 학벌사회가 개선되지 않는 한 경기도 수준의 개혁은 실험성격에 그칠 우려가 있다.
"공교육 중심이 교육의 질을 낮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지금껏 특목고 같은 학교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다 보니 일반 공립학교 교사와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갔다. 다시 말해 교육양극화가 심화돼 공교육의 질이 떨어졌다. 이를 반드시 개선해 사교육이 필요 없는 공교육의 토대를 만들겠다."
- 진보 및 전교조 성향으로 분류됐다. 전교조와의 관계정립이 궁금하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2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경기교육연대의 지지를 얻었다. 전교조와 1대1 등치는 부적절 하다고 본다. 전교조와 달리 나는 합리적인 교원평가제도 도입을 찬성한다. 부적절한 교사는 지금보다 더 강력히 조치해야 한다고 믿는다."
- 교수 출신이라 초ㆍ중등교육을 알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리더가 실무까지 모두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고 본다. 20여년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연구와 토론, 정책개발을 많이 했다. 전체를 조망하고 정책을 개발하는데 강점이 있다고 자신한다."
- 남은 임기까지 1년2개월은 역량을 발휘하기에는 짧지 않은가.
"생각하기에 따라 4년도 짧을 수 있다. 문제는 지속 가능한 교육을 정착시키려는 의지다. 올바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방향설정에 충실해 1년을 4년처럼 쓰겠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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