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10억원 이상을 '받아 쓴' 당사자로 부인 권양숙 여사를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노 전 대통령측은 "개인적 빚이 남아 있어 권 여사가 박 회장에게 돈을 요청해 썼고, 노 전 대통령은 근래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핵심은 노 전 대통령이 돈 거래가 이뤄질 당시엔 이를 '몰랐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 전 대통령 부부 모두 사법처리를 면할 가능성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몰랐다면 그에겐 특별히 형사적으로 죄를 묻기 어렵다. 권 여사도 대통령 부인을 공무원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뇌물죄' 적용은 쉽지 않다. 알선수재 혐의를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이는 특정한 청탁이 전제돼야만 한다. 뇌물죄와 달리 '포괄적 알선수재'는 법원에서 아직까지 받아들여진 바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전례도 있다. 2007년 말 정창영 당시 연세대 총장의 부인이 편입학 응시생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결국 정 전 총장 부부 모두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응시생이 시험에서 탈락한 뒤 돈을 돌려준 데다, 정 전 총장이 관련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도적적 비난의 소지는 있으나, 법적으로 혐의점을 찾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자신이 법률가이고, 측근들과의 대책회의를 통해 법률적 자문을 받았을 노 전 대통령이 주요 참고사례로 삼았을 법하다.
결국 '10억원 의혹'에서는 권 여사와 박 회장 간 돈 거래 사실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인지여부가 핵심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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