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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화성과 금성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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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화성과 금성의 거리

입력
2009.04.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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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댁에 전화를 넣었다. 예전 같으면 전화비 걱정에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고 할 어머님이 마침 전화 잘 했다고, 지나가는 강아지라도 붙잡고 하소연할 판이었다고 반색을 한다. 사정은 이랬다. 매일 먹던 칼슘제가 그날따라 삼키기 어려웠다. 커다란 정제가 그만 목에 걸려 숨통이 다 막혔는데 달려와서 등이라도 두들겨줘야 할 '영감'이 외출할 옷을 찾는데 정신이 뺏겨 본체만체했다는 것이다. 점심 때가 다 지나도록 서운함이 가시지 않았다.

부부가 한평생 같이 사는 재미가 뭐냐, 서로 아껴주고 알콩달콩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던 어머니가 급기야 눈물까지 보였다. 전화를 끊고 나자 어머니의 앙상한 몸이 투영된 엑스레이가 눈앞에 그려졌다. 열여덟, 스물둘 홍안의 젊은이들이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일곱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큰아이와 막내의 터울은 열세 살, 어머니는 13년 동안 끊임없이 임신과 출산을 거듭했다. 아이들 끼니와 교육 걱정에 당신 몸 돌볼 사이 없었다.

그 사이 어머니의 뼈에는 숭숭 구멍이 뚫렸다. 회한과 부아, 서러움이 부르르 끓어넘친 아침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영감'의 일거수일투족에 서운해하고 즐거워하는 어머니, 올해로 자그마치 결혼 58년이 되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화성에서 온 할아버지와 금성에서 온 할머니가 되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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