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 이어 보험사에도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먼저 우려되는 문제는 지급결제계좌를 보유한 소비자의 재산권이 침해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 계류중인 개정안은 지급결제계좌를 보유한 소비자의 배타적 소유권을 명시하지 않은 채 지급결제용 자산을 보험사의 특별계정으로 운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 파산 등의 경우 지급결제용 자산이 보험사 소유의 자산으로 해석되어 채권단의 파산재단에 귀속됨으로써 지급결제계좌를 보유한 소비자의 재산권이 침해 당할 소지가 있다.
소비자 재산권 침해 소지
또 다른 부작용으로, 지급결제기능의 즉시성이 훼손되어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정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험사 파산 시 지급결제용 자산의 소유권을 두고 보험사, 채권단, 지급결제계좌를 보유한 소비자 간에 법적소송이 발생하여 해당 지급결제자산에 대한 가처분금지나 가압류 등의 판결이 내려질 경우 일시적으로 지급결제기능이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전체 지급결제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에 심각한 문제가 초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본시장법과 달리 보험업법 개정안이 구체적인 지급결제용 상품을 법률에 명시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는 점도 문제이다. 헌법 제75조에 의하면 시행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한 사항에 한하여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것인데, 지급결제 대상 상품과 같은 핵심 내용을 법률에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위임한다면 위헌여부 등 법적 타당성 논란을 부를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헌법 제75조의 취지는 입법을 위임할 경우 법률에 미리 대통령령으로 규정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행정권에 의한 자의적인 법률의 해석과 집행을 방지하고 의회입법과 법치주의의 원칙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급결제 대상 상품을 구체적으로 법률에 명시하지 않은 것은 특히 금융업권 사이의 이해관계 및 금융소비자의 알 권리 등이 걸린 금융질서 확립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처럼 보험사의 지급결제 대상 상품이 구체적으로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가운데 기존의 보험상품 또는 변형된 상품, 예컨대 고객예탁계좌 등이 지급결제가능 상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적잖은 논란을 예고한다.
보험사의 지급결제용 상품으로 보험상품이 활용될 경우 금융실명법과 관련된 심각한 위법사례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금융실명법 제2조는 예금, 적금, 신탁재산 등 실명제가 적용되는 금융자산을 나열하고 있어 보험상품은 제외되어 있다. 따라서 보험상품이 지급결제용 상품으로 활용될 경우 해당 상품이 금융실명법 적용을 회피할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폭 넓은 의견 수렴 필요
보험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것은 이처럼 법률적 측면에서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순히 법리적 타당성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의 권익 및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해당 조항을 나중에 수정하고 보완하면 될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중요한 입법 결정에 앞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폭 넓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소모적인 논쟁과 입법 부작용을 미리 막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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