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한 탐색전으로 일관하던 정부가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한다”고 공식 선언한 것. 작년 9월 외평채 발행 실패의 뼈아픈 경험을 안고 있는 정부로선 더 이상의 실패는 용납될 수 없는 절박한 입장이다. 그만큼 지금 시장 상황에 대해 확신이 선 것으로 보인다.
꽁꽁 막혀 있던 외화 조달 여건이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은행들이 속속 외채 발행에 나서고 있고, 정부도 곧 성공적인 외평채 발행 소식을 전해줄 분위기다. 북한의 로켓 발사도 별 다른 걸림돌이 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해외에서 돌발 대형 악재가 터지지 않는 한, 작년과 같은 극심한 외화 유동성난은 없을 것이란 평가다.
기획재정부는 7일 외평채 발행을 위한 주간사 명단을 블룸버그에 게시하고 외화 표시 외평채 발행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실제 주간사 선정은 지난달 말에 이뤄졌지만 시장 분위기만 탐색하고 공식 발표를 미뤄왔다”며 “북한 로켓 발사가 국내외 금융시장에 큰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고 오늘 발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발행 규모는 아직 유동적이지만 20억달러 선이 유력하다. 이 관계자는 “주간사 발표와 함께 예비 접촉을 해 본 결과 상당히 많은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등 분위기가 좋다”며 “늦어도 9일까지는 발행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뿐 아니라 은행권 외화 자금시장에도 봄 기운이 완연하다. 이달 초 하나은행이 정부 지급보증을 받아 비교적 낮은 금리(리보+4.9%P)로 10억달러의 글로벌 채권 발행에 성공했고, 우리은행은 6일 사모 형태로 3억 달러를 차입했다.
정부가 좋은 조건에 외평채 발행에 성공한다면, 금융권 외화 조달에 더욱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정부가 외평채를 발행하는 건 자금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은행이나 기업들에게 기준금리(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등 길을 터주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농협, 기업은행, 신한은행, 산업은행 등 현재 4~5월 중 예정된 외화 차입 대기 규모만 20억달러를 웃돈다.
외화 차입이나 유동성 여건을 보여주는 지표들도 상당히 호전됐다. 한국물 채권의 신용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한달 전 4.65%에서 2.95%(3일 현재)까지 낮아졌다. 작년 10월 50%대에 머물던 금융회사와 기업의 단기외채 차환율도 지난달에는 106.3%로 100%를 넘어섰다. 빚 상환을 위한 차입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앞으로 관건은 외채 조달에 따른 비용이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외 돌발 악재라는 변수를 배제하고 보면 무역수지 흑자, 증시에서의 외국인 순매수 등까지 맞물리면서 당분간 외화 유동성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된 걸로 보여진다”며 “이제는 조달 비용을 얼마나 낮춰서 수익성 악화를 차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고 은행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보증 기한을 6월말에서 올해 연말로 6개월 연장하고 지급보증 대상 채권도 만기 3년 이내에서 5년 이대로 확대하는 내용을 의결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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