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육십 살이 된 할머니가 참 예쁘게도 노래하는구나. 어쩌면 저렇게 곱고 깨끗할까.
6일 저녁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와 고음악 앙상블 '런던 바로크'의 공연은 행복감을 선사했다. 순수하고 투명한 음색에 숨쉬듯 자연스런 그의 노래는 지친 가슴을 어루만지는 상냥한 손길 혹은 차고 맑은 샘물 한 모금 같았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근사한 제목을 건 이 무대는 셰익스피어(1564~1616) 당대 또는 후대에 그의 희곡과 시로 영국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 10여 곡과 같은 시기의 기악곡으로 구성, 고전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진 고풍스런 정취를 자아냈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산 로버트 존슨, 헨리 로스, 존 젠킨스를 비롯해 한 세기 뒤 퍼셀, 18세기에 '십이야' '베니스의 상인' 등 셰익스피어 연극의 부수음악을 작곡한 토마스 안까지, 영국 문화의 황금기를 수놓았던 음악들이 청중을 과거로 데려갔다.
커크비는 '고음악의 여왕'다운 기품을 보여줬다. 셰익스피어 최후의 걸작인 '템페스트' 상연(1611년) 당시 삽입됐던 로버트 존슨의 '다섯 길 물 아래 그대 아버지가 누워 있네'와 '벌이 꿀을 빠는 곳'으로 시작한 그의 노래는 토마스 안의 '4개의 셰익스피어 노래'로 끝을 맺었다. 특히 토마스 안의 네 곡 중 '아리엘의 노래'는 전반부에 들려준 로버트 존슨의 '벌이 꿀을 빠는 곳'과 같은 가사로 돼 있어, 흥미로운 대조를 이뤘다.
존슨의 곡은 시의 운율을 그대로 살린 점에서 노래보다 시에 가까운 음악인 반면, 한참 후대인 안의 곡은 시보다 선율이 부각되는 노래다. 두 작곡가 사이 130여년 간에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셰익스피어 당대에는 시가 곧 노래이고 음악과 연극이 일체이던 것이 후대로 갈수록 각각 분리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퍼셀의 곡으로는 셰익스피어 연극 '한여름밤의 꿈'을 각색한 '요정 여왕'의 네 곡 등 모두 여섯 곡을 불렀다. '요정 여왕' 중 가장 유명한 '애가 - 오, 울게 내버려 두오'가 '영원히'(for ever)라는 가사를 반복하며 사라질 때, 잃어버린 사랑을 탄식하는 그의 노래는 청중의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겼다.
그는 노래마다 거기에 맞는 가벼운 제스처와 표정을 곁들여 귀와 눈을 모두 붙들었다. 퍼셀의 '내가 아가씨들의 불평을 들을 때마다'의 사랑스러움, 안의 '아리엘의 노래'에 넘치는 달콤함 등 커크비가 들려준 노래는 모두 맛깔스럽고 정성스러웠다.
런던 바로크는 노래 반주 외에 따로 마랭 마레의 '생 콜롱브를 위한 무덤'과 비올 작품집 3권 중 '기타', 퍼셀의 '4성 소나타' 중 9번, 헨델의 '트리오 소나타 라장조'로 프로그램에 풍성함을 더했다. 바이올린 2명에 쳄발로와 베이스 비올이 하나씩인 조촐한 편성이 오붓하기도 했거니와, 서로 주고 받는 신뢰 어린 눈길이 푸근했다. 베이스 비올의 매력을 한껏 전해준 '생 콜롱브를 위한 무덤' 또한 이날 청중이 받은 큰 선물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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