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과 노사 선진화를 위해 1주일만 보도를 미뤄주십시오.”
지난달 26일 밤 일부 언론에서 노후 차량 교체시 세금 감면 등을 골자로 한 자동차산업 지원책을 보도하자 지식경제부는 출입기자들에게 이렇게 요청했다. 먼저 국익이란 당시 타결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던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두고 한 말이었다. 민감한 시기에 이러한 내용이 보도되면 자칫 협상을 그르칠 수 있다는 논거였다.
지경부가 두번째로 내 세운 이유는 이번 지원책은 노사 관계 선진화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다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 지원에 앞서 자동차업계 노사가 먼저 고통분담을 통한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 데서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10여일이 지난 지금 지경부가 내 세웠던 두가지 논거는 설 자리가 없는 상태다. 한ㆍEU FTA는 다른 이유로 최종 타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노사 관계에서 진전된 성과도 그리 내세울 게 없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 해도 뾰족한 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업계에선 산업 지원책의 전제 조건으로 노사 문제를 내 건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부가 해야 할 성격의 일을 지경부가 나섰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정책인지 노동정책인지 또 다른 전략인지 헷갈릴 정도다. 처음부터 정치 등 다양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면 이건 결코 매끄럽지 못한 진행이다.
이처럼 경제와 정치가 엇갈려 혼선이 빚어지며 나타난 가장 큰 타격은 중소 자동차 부품 업체에게 집중되고 있다. 시장 지배력이 큰 완성차 업체의 판매가 줄었지만 이는 지원책이 시행되면 회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중소기업과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재기하긴 쉽지 않다. 당초 보도 자제를 요청한 1주일도 한참 지나 버렸다. 이젠 정확한 내용을 하루빨리 공식 발표하는 것이 그나마 시장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길이다.
박일근 경제부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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