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기도 교육감을 뽑는 날이다. '교육 대통령'이라는 말이 함축하듯 교육감은 교육에 관한 한 막강 파워를 자랑한다. 경기도교육감은 연간 9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하고, 도내 공립 유치원과 초ㆍ중ㆍ고교 교원 8만여명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한다.
외국어고와 같은 특수목적고 지정 권한, 자율형 사립고 등의 설치ㆍ이전ㆍ폐지 권한, 사설학원 운영 및 수강료 지도 권한도 갖고 있다. 정부의 권한 이양으로 대통령 권한이던 교장 임명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권한이던 도교육청 국장급 이상 장학관 및 교육장, 교육연수원장 등에 대한 임용권도 행사한다. 일선 초ㆍ중등 교육에서 절대 권력을 갖는 것이다.
정치ㆍ이념 대리전 된 교육감선거
그러나 교육감의 비중이나 중요성과 달리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바닥을 기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자녀들의 미래를 책임질 교육 수장을 뽑는다는 정치적 의미는 실종된 지 오래다. 도선거관리위원회 조사결과 투표 의사가 있는 유권자는 전체의 4분의 1 수준인데, 실제 투표율은 이보다 더 낮아져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유권자들이 일련의 교육감 선거에 무관심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교육자치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제도적 맹점, 비리로 얼룩진 민선 1기 교육감들의 비교육적 처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자 1인에게 허용된 법정 선거비용은 36억 1,600만원이다. 교단에서 평생 헌신한 후보라면 만져볼 수 없는 거액이다.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자금을 돌려 받는다지만 재력가가 아니면 출마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빌려서라도 선거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이들만 출마가 가능하다.
또 교원, 교육 행정가로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없으면 출마 자격이 없다.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겸비한 교육계 외부 인사들의 출마는 애당초 원천 봉쇄돼 있는 것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인 후보자들을 보고 유권자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떨어지니 후보자들은 정당이나 단체의 조직표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정치적 중립이라는 교육 자치의 정신은 실종되고, 선거판은 정책 대결보다 정치권과 이념의 대리전으로 변질된다. 유권자들의 '선거 혐오 증세'는 악화할 수밖에 없다. 교육감들의 잇단 비리도 유권자의 선거 무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충남ㆍ경북 교육감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사퇴했고, 공정택 서울시교육감도 1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그렇다고 불과 시행 3년째인 교육감 직선제의 제도적 허점과 부작용을 명분 삼아 교육 자치를 포기하려는 시도는 적절치 않다. 한나라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광역 자치단체장과 시ㆍ도교육감 러닝메이트제의 도입을 추진한다지만 이는 교육의 정치 예속화만 부추길 뿐이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비용에 비해 턱없이 낮은 투표율을 이유로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한 간접선거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간접선거의 폐단을 감안할 때 과거로의 회귀는 바람직하지 않다.
최선 없으면 차선이라도 찾아야
필요한 것은 제도 개선이지 제도 폐기가 아니다. 다양한 배경과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교육계 내외부 인사들이 출마할 수 있도록 후보 진입 장벽을 낮추고, 1인당 후원금 한도를 정해 후원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거나 TV토론 의무화처럼 선거공영제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안을 도입한다면 '고비용 저효율'구조는 개선될 수 있다. 그런 노력조차 없이 교육 자치의 후퇴를 모색하는 것은 뜬금없다.
근본적으로는 교육감 선거에 대한 학부모들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자녀가 다닐 학원을 고를 때 요모조모 따지는 노력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공교육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투표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찾는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오늘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투표장에 가야 하는 날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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