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이탈리아 아브루초주 주도 라퀼라시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수세기를 이어온 귀한 중세 유적들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희생자 수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추가 붕괴 위험 때문에 본격적인 구조작업도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너져 내린 중세 유적
신성로마제국의 프레데릭 2세가 1240년 세운 도시 라퀼라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 다양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유적들이 상당수 자리잡고 있어 중세 건축의 박물관 같은 곳이다.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건축물은 1289년 지어진 산타마리아 디 꼴레마기오 성당이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이 성당은 이번 지진으로, 그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타일 장식의 상당 부분이 손실됐고 성당 뒷부분도 무너져 내렸다.
이 성당은 1294년 첼리스티노 5세의 교황 즉위식이 열린 곳이며 그의 무덤이 있기도 해, 해마다 수천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라퀼라시 중심부에서는 16세기에 지어진 샌 베르나디노 성당의 종탑이 산산조각났으며 바로크 스타일의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의 돔도 무너져 내렸다. 이들 건물은 1703년 지진으로 이미 한 차례 무너져 내린 것을 20세기 들어 복원한 것이다.
라퀼라 국립 박물관이 위치한 16세기의 스페인식 성곽 역시 파괴됐다. 박물관 내 문화재의 훼손 여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탈리아 통신사인 ANSA를 인용해 신성로마제국의 샤를 5세를 기념하기 위해 1548년 건설된, 이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문인 포르타 나폴리도 무너졌다고 전했다. 지진의 피해는 라퀼라에서 110㎞ 떨어진 로마에까지 미쳐 유명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카라칼라 목욕탕도 일부 훼손됐다.
추가 붕괴 위험으로 맨손 수색작업
현재 구조 인력들은 맨손으로 생존자 수색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희생자 수는 계속 늘어나, 이탈리아 정부에 따르면 7일 현재 사망자는 179명으로 늘어났다. 이밖에도 34명이 실종됐으며 1만7,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특히 학생들이 대거 매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 인근 기숙사와 학생용 아파트에서 구조 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생존자는 나오지 않고, 6일과 7일 무너져내린 기숙사 잔해에서 잇따라 시신이 한 구씩 나오자 빗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가족들은 절망감에 오열했다. 7일 시내 학생 아파트에서도 21세 여성과 22세 남성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부상자 수도 상당하지만 병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라퀼라 시내의 한 종합 병원은 붕괴 위험 때문에 대피 명령이 내려졌고 현재 수술실 2개만 운영 중이다. 때문에 피투성이의 부상자들은 복도나 병원 밖에서 널브러진 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지진은 1980년 11월 이탈리아 남부에서 발생해 3,0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진도 6.9의 지진 이후 최악으로 기록되고 있다.
CNN방송은 라퀼라 현지 신문을 인용해 이 도시의 그란 사소 물리학 연구소의 지오아치노 줄리아니라는 직원이 지진을 미리 경고했으나 당국이 무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직원은 "지난달 대기중의 라돈 가스 농도를 측정한 결과 강진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자동차를 몰고 시내를 주행하면서 주민들에게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을 하다 경찰에 제지당했다"며 자신의 요구를 무시한 당국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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