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정점에 있으면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그토록 어려운 걸까. 도덕성을 최고의 무기로 삼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7일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수뢰 혐의 등으로 전직 대통령과 측근들이 사법처리되는 한국 정치의 부끄러운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퇴임 뒤 사법처리'라는 부끄러운 공식을 처음 만들어낸 당사자다. 이들은 모두 재임 시절에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대법원으로부터 각각 2,205억원, 2,628억원을 추징당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은 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만큼 재벌들로부터 상납받은 비자금의 규모 역시 천문학적이었다.
당연히 주변 인사들은 경쟁적으로 돈을 챙겼다. 전 전 대통령의 형 기환씨, 동생 경환씨, 처남 이창석씨 등이 제각각 돈을 챙겼고 노 전 대통령의 동서인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과 처남인 박철언 전 정무장관 등도 모두 돈을 좇았다. 두 전직 대통령의 친구인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과 이원조 전 은행감독원장 등도 수백억~수천억 원의 비자금 조성에 앞장섰다.
문민정부 이후로는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확인된 게 없지만 친인척과 측근인사들의 비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군사정권 종식을 명분으로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며 5,6공 비리를 단죄했지만 정작 아들 현철씨는 한보 비리에 연루돼 헌정사상 첫 대통령 아들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YS의 최측근인 김우석 전 내무부 장관을 비롯, 오랜 기간 지근거리에서 YS를 뒷바라지해 왔던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과 장학로 전 청와대 1부속실장 등도 모두 검은 돈의 수렁에 빠졌다. 심지어 처남까지도 대학 운영권을 되찾아주겠다며 뒷돈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YS 본인은 "재임 중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1992년 대선을 치르고 난 잔금이 수백억 원대에 이른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아들과 측근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선 국민의 정부도 비슷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와 홍걸씨 모두 기업체들로부터 이권 청탁 등의 대가로 수십억 원대의 돈을 받았다가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아버지 재임 중에 구속됐다.
DJ 진영의 좌장이었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한보 비리 때 구속된 데 이어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면서 정작 국민의 정부 내내 제대로 밝은 빛을 못 봤다. DJ의 '영원한 집사'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도 권력의 떡고물에 취했었다. YS와 마찬가지로 DJ도 직접 검은 돈을 받은 게 확인된 적은 없지만 정치권에선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참여정부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비리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했다. 집권 초반 노 전 대통령의 20년 금고지기였던 최도술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그룹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썬앤문 사건이나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사건 등과 관련해서도 측근 인사들이 적잖게 거론됐었다.
살얼음판 같던 참여정부 인사들의 비리는 결국 박연차 리스트라는 뇌관을 만나면서 터지고 말았다. '봉하대군'과 '우(右)광재' 등이 줄줄이 영어의 몸이 된 데 이어 이번엔 노 전 대통령 본인까지도 검찰 수사의 초점이 되고 만 것이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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