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웍(Smart Work)으로 직장 분위기를 바꿔라.'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유일의 글로벌 기업이지만, 근무 형태만은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 늦게 퇴근하는 건 기본이고, 주말은 물론 휴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찌 보면 이 같은 '한국적인' 끈기와 성실함이 오늘날의 삼성을 일궈낸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지금처럼 '창조경영'이 강조되는 시대에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는 타이트한 근무 방식은 오히려 창의력 발휘에 역효과만 낳기 십상이다. 신세대 삼성맨들은 휴식과 여가를 보장하지 않는 근무방식에 염증을 느껴 과감히 사표를 던지는 경우도 흔하다.
삼성전자가 수십 년 간 유지해온 근무 형태에 일대 혁신을 꾀하고 있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휴가도 충분히 보장하는 등 기업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양보다는 질을 앞세워 효율적으로 일하는 '스마트 웍'으로 직장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6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자율 출근제에 이어 다음달부터 순환 휴가제를 도입한다. 순환 휴가제란 직원들이 돌아가며 월 1회 금요일에 쉬는 것이다. 토, 일요일까지 포함해 3일을 쉬는 셈이다. 직원들은 이 제도를 통해 여름 휴가철을 제외하고 연간 최대 7회 순환 휴가를 갈 수 있어 20일 가량 주어지는 연ㆍ월차를 모두 소진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휴무 예고제도 도입했다. 직원들이 휴가 계획을 세우기 쉽도록 사전에 회사가 쉬는 날을 알려주는 제도다. 삼성전자는 우선 다음달 4일을 휴일로 예고했다. 토, 일요일인 5월 2, 3일과 어린이날(5일)을 붙이면 직원들은 4일 동안 쉬게 된다. 연말인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도 휴무로 예고했다. 역시 성탄절과 연초(1~3일) 연휴를 합치면 최대 열흘 간 휴가가 주어지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왜 갑자기 달라졌을까. 기본 틀은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의 일환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어려울 때일수록 변화가 필요하다"며 "창조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근무시간 위주의 근면성을 따졌다면, 이제 근무량보다 성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임원은 "하드웍과 스마트웍의 차이"라며 "농업적 근면성인 시간만 갖고 따지는 것은 하드웍"이라고 말했다.
이달부터 디지털프린팅 사업부에 시범 적용하는 자율 출근제도 마찬가지. 자율 출근제는 직원들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8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연구개발직, 생산직, 사무직 등 업무가 다른 만큼, 서로 같은 시간대에 출근해 비효율적으로 일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자율 출근제와 순환 휴가제는 쉴 때 충분히 쉬고 일할 때 집중 근무를 통해 창조적 조직문화를 만들고 직원들의 삶의 질도 높여보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비용 절감에 거는 기대도 크다. 자율 출근제는 야근 수당을 줄일 수 있으며, 순환 휴가제는 연ㆍ월차 수당을 아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연ㆍ월차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따라서 사라진 연ㆍ월차 수당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순환 휴가제는 필요하다.
이런 결정은 경영진과 직원들의 공감대에서 나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윤우 부회장이 일련의 기업문화 개선 작업으로 이번 제도를 도입했지만, 사원협의회를 통한 의견 개진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율 출근제와 순환 휴가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관리자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부하 직원들이 눈에 안보이면 불안해 하는 관리자들의 사고부터 변해야 한다"며 "자율 출근제와 순환 휴가제 도입은 관리자들의 구시대적 사고를 깨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부장급 이상 관리자들은 직원들의 휴가계획까지 챙기려면 그만큼 일이 늘어난다며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업무 공백을 막으려면 충분한 의사 소통을 통한 업무 조정도 필요하다.
직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자기 계발과 가족들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그룹에서는 삼성전자의 반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적용 결과에 따라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면 전 계열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기업문화 개선을 위해 도입한 여러 시도들의 반응이 좋으면 타 계열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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