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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4번째 아내이자 동지, 장칭의 파란만장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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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4번째 아내이자 동지, 장칭의 파란만장한 삶

입력
2009.04.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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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기념할만한 날이다. 25년 전 오늘 정치국 회의가 소집돼 나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문화대혁명 영도소조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주석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학생이자 전사가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1966년 시작돼 중국을 10년 동안 혼란에 빠트리며 수천만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장칭(江靑)이 1991년 5월 스스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인민일보 위에 휘갈겨 적은 유언이다.

관영 신화통신의 사이트 신화망(新華網)이 6일 전한 바에 따르면 당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최근 그간 베일에 싸였던 장칭의 말년에 관한 비화를 소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4번째 아내이자 '4인방' 일원으로 문화대혁명을 이끌었던 장칭은 76년 마오가 사망하자 체포됐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권을 잡고 실용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한 80년부터 장칭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이듬해 그는 집행유예 2년부 사형선고를 받았다.

2년 뒤 장칭의 형은 무기징역으로 바뀌었고 장기간의 수형생활에 들어갔다. 장칭은 당초 베이징의 서북부 창핑(昌平)현에 위치한 친청(秦城) 교도소에 수감됐다. 하지만 84년 5월 신병을 이유로 감옥 밖에서 치료를 받았다.

88년 12월 마오의 95번째 생일을 맞아 장칭은 당국에 가족과 함께 이날을 기념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허가가 내리지 않자 그는 몰래 모아둔 수면제 50알을 한꺼번에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 간수가 그를 일찍 발견해 생명을 겨우 구했다. 이후 장칭에게는 수면제가 제공되지 않았다.

다음해 3월 장칭은 다시 친청 교도소로 돌아왔는데 인후암에 걸린 사실이 뒤늦게 발견됐다. 장칭은 의사들의 수술 권유를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완강히 뿌리쳤고 요양을 위해 재차 교도소 밖 생활이 허가됐다.

이에 장칭은 과거에 살았던 중난하이(中南海)의 마오쩌둥 처소 또는 문혁시대에 거주한 댜오위타이(釣魚臺) 17호실에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당국이 난색을 표하자 장칭은 자살하겠다고 협박해 결국, 베이징 시내 차오양(朝陽)구 주셴차오(酒仙橋) 부근에 거처가 마련됐다.

마오를 내세워 갖은 패악을 부른 장칭이지만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셴차오에 머무는 동안 '리룬칭(李潤靑)'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李'는 자신의 원래 성이고 '潤' 은 마오가 한때 사용하던 이름이며 '靑'은 장칭의 '靑'에서 따올 정도로 남편과의 부부 정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침상 옆에 마오와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 놓은 장칭은 자살하기 전까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마오쩌둥 선집'을 읽고 마오의 시를 암송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91년 2월 인후암이 악화하면서 고열에 시달려 공안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장칭의 마오를 그리는 마음은 여전했다. 고인을 기리는 청명절을 앞두고 장칭은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있는 마오쩌둥 기념관을 참배하고 싶다고 당국에 부탁했으나 거절 당했다.

상심한 장칭은 이후 회고록 집필에 몰두했지만 5월 10일 돌연 회고록 원고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찢고 주셴차오의 거처로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장칭의 이상 행동을 걱정한 딸 리나(李納)와 사위가 이틀 뒤에 달려왔으나 그는 만나기를 끝내 거절했다.

5월 13일 장칭은 인민일보 1면 위에 마오를 흠모하고 뒤따라 간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14일 새벽 1시30분 담당 간호사가 장칭의 병실을 떠난 뒤 3시30분 당직 간호사가 왔을 때 장칭은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장칭은 담당 간호사가 방을 나가자 미리 준비한 손수건을 연결해 끈을 만들어 목을 맸는데 대략 3시께 절명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의 시신은 18일 가족, 친지 누구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화장됐고 유골은 딸 리나에게 전달됐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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