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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 요원들, 목격자와 공감하며 '기억 속 퍼즐' 함께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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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 요원들, 목격자와 공감하며 '기억 속 퍼즐' 함께 맞추기

입력
2009.04.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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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교육장. 전국에서 모인 경찰 몽타주 요원 29명이 컴퓨터 앞에 바짝 붙어 앉아 바쁘게 마우스를 놀리고 있다. 새로 업데이트 된 몽타주 프로그램 활용법을 익히는 정기교육 현장이다.

사흘간의 일정 중 이틀째인 이날은 디지털 만화가 석정현씨가 강사로 나와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의 취약점인 헤어스타일 등 표현기법을 집중 강의했다.

"이제 여기 사진 속 40대 남자의 몽타주를 작성해 볼까요." 예제가 떨어지자 마우스를 쥔 요원들의 손놀림이 더욱 바빠졌다. 모니터에 얼굴의 윤곽선이 뜨고 그 안에 눈, 귀, 코, 입이 차례로 자리를 잡는다. 1시간쯤 지나자 몽타주가 완성됐다.

곧이어 품평회가 열렸다. 훈련생들도 비평에 자유롭게 참여했다. "박 경사의 몽타주는 얼굴 형태 터치가 좋습니다. 짧은 머리의 특징도 잘 살렸어요." "이 경사의 것은 눈썹과 미간 특징을 잘 잡았네요." "이 몽타주는 헤어스타일이 영 어울리지 않네요."

29명 전원의 작품을 놓고 1시간 30분간 이어진 품평에 베테랑 요원들도 진땀을 뺐다. 몽타주 경력 3년의 서울경찰청 소속 김진수(39) 경사는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도 어려운데, 목격자의 이야기만 듣고 몽타주를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다"고 귀뜸했다.

최근 범죄 수사에서 폐쇄회로(CC)TV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용의자의 얼굴 등이 고스란히 찍힌 화상을 확보하는 '행운'이 늘 따르는 건 아니다. 이럴 땐 목격자들 기억의 조각들을 복원한 몽타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한 해 작성되는 몽타주는 350건 안팎. 이 중 실제 범인 검거에 유력한 단서가 되는 경우는 20% 가량이다. 작지 않은 수치다.

몽타주(montage)는 프랑스어로 조립을 뜻한다. 범죄 수사에서는 목격자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물론, 무의식에 남은 잔상까지 끌어내 이것을 조합해 범인의 얼굴을 '창조'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그래서 몽타주는 초상화와는 다르며,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몽타주 요원들 가운데 미술 전공자도 극소수다. 다만 그림에 재능이 있거나 관심이 있을 뿐이다.

몽타주 요원은 과학수사대(CSI) 소속으로, 대개 현장검증 요원이나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중에서 선발된다. 올 1월 선발된 새내기 몽타주 요원 10명 중 한 사람인 공은경(30ㆍ경기경찰청) 경장도 프로파일러 출신이다.

요즘 미술학원을 다니며 실력을 다지고 있다는 그는 "용의자를 종합 분석하는 프로파일러 경험을 잘 살리면 몽타주 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에서 경찰이 몽타주를 탐문 수사에 처음 활용한 것은 1975년. 당시에는 스케치 중심의 초상화 기법이 유일했다. 요즘에는 포토샵 등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것이 대세가 됐다. 컴퓨터 기법은 96년 처음 도입됐는데 당시 국내 프로그램이 없어 미국 것들을 들여다 썼다.

"사람 손보다 정확하다는 컴퓨터를 썼는데 정작 완성된 얼굴이 너무 어색한 겁니다.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주로 서구인들 얼굴 데이터가 입력된 프로그램을 쓴 탓이었죠."(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권정택 경사)

경찰은 99년 1만1,000여개의 한국형 얼굴 데이터를 입력한 프로그램을 개발, 활용하고 있다. 얼굴 데이터는 전체적인 윤곽과 코, 눈, 광대뼈, 볼, 입, 턱 등 16개 부분별로 각각 1,000여개에 이르며, 해마다 업데이트 하고 있다.

전문 수사관들은 "몽타주는 가슴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끔찍한 장면을 되살려야 하는 피해자나 목격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에서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목격자의 기억이 흐릿할 경우 최면기법을 쓴다. 최면을 이용해 무의식이라는 암실 속에 있는 기억의 필름을 인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종종 수사관들이 피해자 또는 목격자의 감정에 동화되기도 한다. 김진수(39) 경사는 "지난해 성폭행을 당한 20대 여성의 진술을 들을 때였는데, 최면 상태에서 끔찍한 기억 때문에 우는 피해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울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끌어낸 기억을 토대로 프로그램을 활용, 얼굴의 각 부위를 그려나간다. 이를 조합하는 마지막 단계는 수사관들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다. 각 부위는 기억과 일치하는데 전체적으로 조합해 놓으면 "이 사람이 아닌데…"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이미지 탓이다. 같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수사관의 '감'이다.

극장 간판 화가 출신으로 국내 최고의 몽타주 전문수사관으로 꼽히는 박만수(50ㆍ충북경찰청) 경위는 "이미지를 만榕爭뺨?마지막 단계가 가장 중요한데, 목격자로부터 '맞다! 이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올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선 수사관들이 몽타주에 의지하는 것은 사건 발생 초기나 별다른 단서가 없어 수사가 난항을 빠진 경우다. 지난해 9월 서울 장위동과 미아동 일대 찻집 10여곳에서 강도 행각을 벌인 박모(42)씨 검거에도 몽타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몽타주를 작성한 이창호 경사는 "DNA 분석 등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다들 몽타주에 기대를 걸었는데, 다행히 몽타주를 본 50대 목격자의 도움으로 범인을 잡게 돼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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