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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구두선에 그친 일자리 늘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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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구두선에 그친 일자리 늘리기

입력
2009.04.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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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 장관과 여당 고위 당직자들은 요즘 재계 인사를 만날 때마다 "고용과 투자를 늘려 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출자총액제한제를 없애고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등 친기업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재계도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 노력으로 화답해 달라는 것이다.

기업들도 말로는 일자리 늘리기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표명했다. 갈수록 악화하는 경영 환경을 감안하면 신규 채용을 늘리기 어렵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채용 규모를 예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더 늘리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구두선으로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생 인턴 등을 섞어 전체 채용 인원만 늘렸을 뿐, 오히려 정규직 일자리는 줄이고 있다. 삼성과 LG는 올해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작년 대비 20~30%나 축소했고, 그나마 예년 수준을 유지한 기업도 기존 임직원은 상당폭 줄인 경우가 많다. 인턴의 경우 정부에 협력하는 모양새를 갖추느라 마지못해 뽑은 인력이다 보니, 충분한 활용계획을 세웠을 리 만무하다. 인턴을 제대로 운영한다고 해도 길어야 6개월이고, 그 이후엔 실직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재계의 속내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의 발언에서 쉽게 읽혀진다. "해외 선진 기업들은 오히려 투자를 줄이고 있는데, 현 상황에서 투자를 무작정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국내 기업인들의 상황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 탓에 인력을 줄여야 할 때인데도 사회적 여론을 의식해 무리해서 채용을 늘리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다.

정부의 고용 확대 정책이 기업의 구조조정을 방해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그러면서 도요타 등의 감원 움직임을 반론의 근거로 자주 거론한다. 하지만 일본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선 미국이 손을 벌릴 경우에 대비해 미리 '엄살'을 피우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일본의 야당과 시민단체가 "대기업들이 내부 유보금 1%씩만 써도 비정규직 40만명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며 감원 기업들을 비난하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2월 일자리는 14만2,000개나 줄었다. 실업자는 92만명으로 '100만명 실업자 시대'가 코앞이다. 정부와 사회 각계는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 고통 분담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다들 어렵지만, 기업 사정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면 특히 그렇다. 당시엔 과도한 빚과 고금리 탓에 대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상황이어서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웠다.

반면 지금은 비록 수출시장이 좋지 않지만, 기업 내부 역량은 튼실한 편이다. 현재 국내 상장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70조원을 웃돈다. 또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의 이익유보율은 2,000%를 넘는다. 기업이 영업활동 등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 중 사내에 쌓아두고 있는 잉여금이 자본금의 20배를 넘어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일자리 확대를 빌미로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 등 당근만 챙긴 뒤 '나 몰라라' 하는 행태를 보이는 우리 기업들에게 <포춘코리아> 창간호에 나오는 사우스웨스트 항공 사례를 들려주고 싶다. 지난 13년간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됐고, 올해 7위에 오른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38년 동안 경기 침체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회사 뿐만 아니다.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인재 발굴 및 양성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게 존경받는 기업들의 공통점이다. 그런 노력이 경제 회복기에 커다란 과실로 돌아왔음은 물론이다.

고재학 경제부 차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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