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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21> 문학평론가 도정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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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21> 문학평론가 도정일씨

입력
2009.04.0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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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도시화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서울은 상파울루, 뭄바이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인구밀도는 최고인 도시다." 당신의 짐작은 옳았다.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김성홍 교수가 근저 <도시 건축의 새로운 상상력> 에서 밝힌 대로다.

1994년 낸 비평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에서 환경 파괴의 위험을 고발했던 문학비평가 도정일(68ㆍ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사장)씨는 몇 년 전부터 문학비평은 일단 미루고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혀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막 일던 1990년대 초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의 자살"이라고 우려했던 그는, 이제 사면초가의 위기에 봉착한 인문주의의 보호막을 위해 '책의 성'을 쌓자고 호소한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다수 공익의 원칙에다 신뢰할 만한 소수 의견의 공존"이 이 시대에 가능할까? 인터넷이라는 문명, 창조적 소수라는 문화적 요구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지금 그의 머릿속은 거대한 시험장이다.

- 매체에 큰 기대를 갖고 있는 듯하다.

"시민단체, 언론이 함께 도서관 짓겠다고 한 건 MBC TV의 '!'(느낌표)가 처음이다. 나 같은 영문학자, 문학비평가가 대중매체에 알려지기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오락 프로그램이 공익성과 결합한 예외적 사례라는 데 주목, 1년 동안 결석 안 하고 나갔다."

- 방송 출연에 대한 자평을 한다면.

"도서관 짓기는 원래 나라가 해야 할 일인데, 마침 MBC가 먼저 제의해 온 것이다. 한국에 제대로 된 어린이도서관을 짓자는 문제가 처음으로 사회적 주목을 끌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이 도서관운동의 전환점이 된 건 분명하다.

대중매체가 도서관 짓자, 책 읽자는 화두를 들고 나온 것은 그게 처음이다. 그러나 '느낌표'가 선정한 책만 수십만 부 팔리다 보니 결국 시장을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 그런 데서 부르면 또 가겠나.

"당연히 가야지. 미국에서는 오프라 윈프리가 책 들고 나가 선전한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책읽기를 권면하는 단체의 장으로 그런 요청을 거부할 수 있겠나."

- 방송은 어떤 효과가 있었나.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한 도서관의 필요성을 정책 입안자들이 느끼게 됐다는 점이다. 경기도의 예가 대표적이다. 어린이도서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작은 도서관 운동'이 다시 일었다.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아예 도외시돼 온 도서관 문제가 처음으로 공식 제기된 것이다. 고도 정보사회 운운했을 뿐, 그 기본 인프라가 도서관이라는 사실은 관심 밖이었지 않나. 도서관은 민주사회의 필수품이자 사회안전망이며 국민 평생학습의 장이다."

- 도서관 운동은 어떻게 시작됐나.

"전국에 공공 도서관이 370개이던 2001년, 김한길 문화부장관에게 10년 내로 정부가 공공 도서관 1,000개를 증설하고, 도서관 콘텐츠 예산은 1,000억원 증액해 달라고 했다. 전국 도서관에 배정된 예산이 모두 50억원이던 때였다. 하버드대가 도서관 콘텐츠 관련 예산으로 1년에 270억원 배정하던 때였다. 한국의 도서관 예산 규모는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정보화사회라는 것보다 개개인이 정보와 지식에 평등하게 접근하고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보접근권은 사회적 평등권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IT를 육성해도 기본 인프라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도서관은 거지 꼴인데, PC만 갖다 놓으면 정보선진화된다는 착각은 여전하다."

- 문화 인프라로서 도서관에 대한 현 정권, 전 정권의 인식 차이가 있나.

"도서관 감세를 추진하는 등 MB 정부도 도서관의 중요성은 안다. 노무현 정부의 도서관 정책이 그대로 승계되고 있다. 노 정권 때 대통령 직속의 별정기구인 정보정책위원회를 잇고 있다. 전 정권에서 만들어진 위원회 중 존속해 있는 유일의 위원회인데, 도서관 발전 정책이 주 업무인 그 기구는 지금 한상완 전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위원장이다.

한 위원장은 2001년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본부에서 도서관 살리기 운동을 함께 했다. 출판협회, 작가회의, 전교조 등 8개 단체와 시민연대운동을 3년간 하다 '느낌표'의 '기적의 도서관 운동'으로 관계가 느슨해졌다."

- 대중적 독서문화운동은 어떻게 시작했나.

"2003년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본부가 문화재단으로 출범하면서 자치단체와 손잡고 '기적의 도서관 운동'을 시작했다. NGO, 언론, 자치단체가 본격적 의미로 제휴한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얼마 안 가 외국에서도 주목받았다.

뉴욕 시라큐스대 문헌정보학과 박사학위 논문에 인용되고, 일본 의회와 독일 독서단체가 크게 관심을 보였다. 재작년에 한상완 교수 주최 세계도서관정보대회 서울대회에서 크게 소개. 미국의 네팔 도서관 짓기 운동 등 벤「뗘?사례가 이어진다. 민간단체가 도서관을 짓는다는 초유의 사건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 도서관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한국의 지역 발전에서 도서관이 중심으로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소는 천민적이지만 한국 같은 자본주의에서도 시민이 마음 먹기 따라서는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도 5,000~1만 원 소액 기부자가 500여명 있다. '느낌표' 중단 이후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금 운동이 시작됐다. 책읽는사회 문화재단 홈페이지(www.bookreader.or.kr) 등을 통해 회원, 후원자 가입이 이어진다."

- 순조롭지만은 않았을 텐데.

"'기적의 도서관' 마지막에는 자원 부족으로 고생했다. 그 사실이 언론 보도 등으로 알려지자 2004년 말 국민은행이 자진해서 20억원을 기부했고, 네이버는 부평 기적의 도서관 건립에 1억5,000만원을 기부했다.

10번째인 정읍 기적의 도서관을 지을 때는 회원 기부금 등으로 1억원 상당의 설계비를 충당했다. 당시 설계비 마련을 위해 간사들의 월급을 50% 줄이기도 했다. 현재 김해 도서관이 설계 단계까지 와 있는데 7, 8월 중 착공 예정이지만 설계비 1억원이 없다. 조건영, 정기용씨 등 공익 건축 활동을 꾸준히 해 온 사람들이 시중 설계비의 3분의 2만 받고 설계할 계획이다.

큰 액수가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겠다. 자치단체가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타이틀을 쓰고, 우리는 콘텐츠와 운영 프로그램 등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 기적의 도서관 전국협의회가 전체 사업을 꾸려간다. 1년에 한 차례 10개 도서관 대표가 모여 프로그램 교환 등을 하며 협력한다."

- 문화 웹진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인터넷 문화가 차고 넘치는 한국에 또 웹진인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공공성과 공익성이 반드시 반(反)시장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필요를 느꼈다. 물론 단기적으로 봤을 때 예술성을 갖춘 작품이 시장에서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나. 믿지 못할 정보가 난무하는 IT 시대와 맞서는 일이다. 우리는 공익성, 독립성이라는 아군을 갖고 있다."

- '품위 있는 삶'을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명저 <정의론> 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다.

"(웃음) 서평에는 주관성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우리는 개인의 판단이 아닌 다수의 판단과 동의ㆍ합의라는 가치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공공성이 높을수록 합의의 가능성은 커진다. 편집위원들이 합의를 시도, 판단을 공유한다. 이 대중문화 시대, 다수란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네티즌의 판단과 동의를 추수하는 시대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자는 것이다."

- 결국 엘리티즘 아닌가.

"문화는 대중성과 정예주의가 결합해야 한다.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정예주의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문화와 정보의 유통에 관여하는 자들은 '수준 유지'가 항상 큰 짐임을 의식해야 한다."

- 거기에도 대전제가 필요할 텐데.

"시장 논리가 예술과 문화를 지배하는 사회는 망할 것을 예약하는, 병든 사회다. 예술을 지원하는 수단이 시장뿐인 시대, 예술이 시장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이제 문제는 고급ㆍ저급 문화라는 구분이 아니라 시장성에 얼마나 오염됐는가에 있다."

- 예를 든다면.

"피카소의 그림은 원래 시장성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빠른 시일 내에 엄청난 대중성을 획득했지 않은가. 대중성과 거리를 둔 작품은 '통시대적으로' 살게 된다. 나는 한국 사회라는 미친 열차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원래 문화ㆍ예술은 시장의 판단과 어긋나기도 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는 시장의 횡포에 함몰된다. 미국 경제의 파탄이 바로 시장에 대한 과신 때문 아닌가."

- 웹진에 닥칠지 모르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봤나.

"출판사가 비판을 받고도 무리한 서평이나 홍보 등을 시도하거나 나아가 굴복을 강요할 때는 (존폐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이 별 다섯 개를 준 책에 서평자가 두 개를 주었다 해서 정예주의 소리를 듣는다면, 그 같은 일은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다."

- 일반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관건이겠다.

"바로 내가 해야 할 큰 역할이 그들 간의 활발한 횡적 소통이다. 덧글ㆍ댓글을 통한 거리낌없는 의견 개진, 쌍방 의견교환 등 가능한 수단을 고려하겠다. 웹 상의 유력 블로거들의 많은 참여를 유도, 세상과의 판단을 공유하도록 할 생각이다.

좋은 의미에서의 문화세력을 지향하는 작업이다. 최소한 돈 버는 데 혈안이 됐다는 소리를 어디에서건 안 들으면 된다. 4월 중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일 웹진은 준비작업이니 주목해 달라. 3년 전 구상했던 것인데, 우리 재단 인째?외부 편집책임자 등 고정 기고자만 10여명이다."

- 유사한 도메인과 무엇이 다를까.

"반드시 서평으로 나와야 할 책들을 건지는 게 최대의 숙제다. 직업이나 정신세계 등 개인에 유익한 경험을 주는 정보가 담긴 책들 역시 소개의 대상이다. 물론 나도 필자로 참여한다. 모든 성과가 축적되면 단행본도 낼 생각이다."

● 7월 창간 '웹진'

그의 결론은 문학, 인문학, 문화 전반을 아우를 인터넷 상의 잡지, 즉 웹진이다. IT 시대가 제공하는 테크놀로지가 독서와 문화 향수에 쓰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이 사업은 발안자인 소설가 황석영씨가 출판사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책을 중심으로 하는 온-오프, 아날로그-디지털 소통의 기회를 확장하고자 하는 이 사업은 독립법인을 창출할 향후 1년까지는 인터넷서점 예스24가 회원 주소록을 제공하는 등 초기 기술을 지원키로 약속한 상태다.

현재 모두 9개 출판사의 확답을 받았다. 문학동네, 세계사, 중앙북스, 북이십일, 창비, 위즈덤하우스, 생각의나무, 자음과모음, 한겨레출판이다.

도정일씨는 황석영씨와 공동 편집인이 된다. 10여명의 편집위원회를 꾸릴 생각인데 현재 성격과 방향 등을 놓고 논의 중이다. 4월 중순까지는 편집위원회를 구성, 5월에 웹진 포맷을 확정하고 6월에 시험 편집, 7월 1일 창간호를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일반 독자와 네티즌의 활동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최대의 목표인만큼 그들의 적극적 참여를 어떻게 유발할 것인가가 최대의 현안이다.

웹진은 철저한 네티즌 제일주의가 원칙이다. 서평 아카이브 등 기본 콘텐츠는 물론 네티즌의 창작품으로 채워진다. 여기에 실리는 콘텐츠는 한 사회의 정신사적 작품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그 신뢰성에 가장 큰 의미를 두겠다는 다짐이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또 하나의 웹진을 추가할 필요가 없어요. 출판계를 위한 NGO도,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에요. 출판물, 웹진도 시민의 공익성 위에서 존립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죠." 참여 출판사 신청은 일단 10일까지 받는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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