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 철거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요?"(건물주) "철거비 빼면 5억 정도는 손에 쥘 수 있을 겁니다."(철거ㆍ재활용업체) "정말요! 감사합니다."(건물주)
건물도 생물처럼 생명을 다한다. 빠른 것은 10년도 안 돼 자취를 감추지만, 어떤 건물을 1,000년을 넘긴다. 어쨌든 생명을 다하면 결국 돈을 들여 폐기 처분해야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대로 철거한다면 오히려 철거가 건물주에게 돈을 안겨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튼튼하게 지은 고층 건물은 더욱 그렇다. 거기에는 전문가들만이 아는 건물 속의 '진주 찾기' 계산법이 숨어있어서다.
노후 건물을 헐고 초고층 건물을 세우려는 도심 재개발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철거의 경제학'의 새로운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철거 과정에서 고철 등 재활용품을 사실상 100% 수거함으로써 건물주와 철거 및 재활용업체는 물론,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구하는 국가 경제에 큰 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윈-윈'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 건물을 부수기 전에 그 안에 '보물'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전문가가 아니면 모른다. 건물주는 새 건물 착공과 폐기물 처리에만 골몰한 나머지, 재활용품은 제대로 챙겨보지도 않은 채 철거업체에게 돈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꼼꼼한 건물주라면 건물 신축에 오히려 돈을 보태는 철거가 가능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좋은 예다. 전경련은 1979년 건설한 지하 3층, 지상 20층짜리로 당시 최고 고층 빌딩이었던 기존 사옥을 30년 만에 철거하고, 그 자리에 50층 규모의 고층 건물을 신축할 예정이다.
전경련은 당초 건물 철거와 관련해 10억원의 손실을 예상했다. 철거ㆍ폐기물 운반에 총 23억원가량이 들어가고, 여기서 나온 재활용품 가치는 13억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전문가 진단에 따르면 재활용품은 휠씬 많고 가치도 기대 이상으로 높기 때문이다.
철거 및 재활용 전문업체인 A사의 계산대로라면 전경련은 철거하는 데 돈을 받아야 한다. 설계도면만 있으면 건물 속 재활용품 가치를 99% 이상 추정할 수 있다는 게 A사의 분석. 이에 따라 연면적 1만5,433평(용적률 313%) 규모의 전경련 빌딩에서는 나오는 재활용품 가치는 고철(7,000톤)과 구리, 스테인리스, 황동, 알루미늄 등 고가 비철금속 등을 포함해 총 33억원(시장가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전경련의 당초 예상 가치(13억원)보다 20억원이나 많다. 결국 철거로 인해 손익 보고서는 10억원 손실에서 10억원 이익으로 바뀐 셈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와 관련, "당초 철거업체와 고철매입업체를 분리해 입찰을 실시하기로 한 상태"라며 "조만간 경제적인 가치와 일의 효율성 등을 고려해 고가 입찰 방식으로 재활용품 처리 업체 선정 등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건물주들이 철거를 자주 하는 게 아니라서 철거를 '비용 발생'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건물 철거에 따른 손익을 정확히 분석한다면 철거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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