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잰걸음이고 야당은 소걸음이다. 4월 임시국회를 맞는 여야의 궁합은 걸음걸이부터 맞지 않고 있다.
여야는 31일 4월 국회 의사일정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4월6일부터 5일간 대정부질문을 갖고 29일에 추가경정예안을 처리한다"는 게 골자다. 의사일정을 놓고 며칠간 여야가 진통을 겪은 것도 따지고 보면 '속도' 차이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은 마음이 급하다. 지난 국회에서 처리 불발된 쟁점법안도 통과시켜야 하고, 슈퍼 추경안도 처리해야 한다. 4월말에는 재보선도 치러야 한다. 의사일정을 서두르는 이유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시간 끄는 게 유리하다. 시간을 끌다 보면 마음 급한 여당으로부터 얻어낼 게 적지 않으리란 계산을 하고 있다. 여야가 상반된 셈법을 들고 시작하는 4월 국회는 그래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4월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지상과제는 28조9,000억원의 추경안을 통과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협조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추경안 심의를 위해선 정부가 지난해 말 경기 예측을 잘못한 것과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 것부터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면 그렇다. 경기예측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곧 추경에 반영된 세수감소분(11조원) 논란으로 이어진다. 예결위에서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추경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경제상황 때문이다.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적당한 선에서 끊고 얻어낼 것을 얻어내는 전략을 쓸 공산이 크다.
"야당이 얻어낼 게 무엇이냐"에 대해선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우선 박연차 리스트가 촉발한 사정정국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민주당은 벌써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실세, 한나라당, 검찰 관계자도 박연차 리스트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선 특검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검찰의 칼날이 번득이는 상황이라 야당으로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도 마련해 두자는 의도가 깔려있다. 여당은 당연히 반대다. 어쨌든 밀고 당길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쟁점법안 처리도 녹록치 않을 것 같다. 현재 국회에는 2월에 처리하지 못한 은행법과 4월에 처리키로 합의가 됐던 금융지주회사법, 산업은행법 등 쟁점법안 다수가 계류돼 있다.
야당 입장에서야 이들 중 몇 개를 다음 국회로 넘기려고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디어법 처리가 예정된 6월 국회에서 여당이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야당은 천천히, 여당은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4월이 될 것 같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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