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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 워낭소리 >의 다큐적 사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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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 워낭소리 >의 다큐적 사실성

입력
2009.04.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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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1면에 <워낭소리> 기사가 났다. 이 영화의 예상 밖 흥행으로 출연한 노부부의 프라이버시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한다. 하루 아침에 유명해진 노부부가 유명세 때문에 치르는 혼란이 다소간은 귀엽게 묘사되고 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독립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고도 하고,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 작은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한국의 폭발적 반응이 과연 미국 땅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 흐뭇하게 지켜보자.

엄정함 벗어난 연출과 편집

그런데 내게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난 직후부터 찜찜한 게 있었다. 그것은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에 대해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태도에 대한 의문이었다. 여러 지면을 통해서 몇 사람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 제기는 영화의 도저한 승리의 행진 속에서 쉽게 묵살되거나 잊혀졌다.

심지어 어떤 평자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문, 표현 방식의 진보'라는 다소 엉뚱한 말로 이 영화를 옹호했다. 그러나 경계는 과연 그렇게 쉽게 허물어도 되는 것일까. 도덕적 정당성이, 혹은 현실의 성공이 모든 것을 다 용서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워낭소리> 를본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는 팔려가는날소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나역시 영화를 보기전 여러차례 이 장면에 대한 말을 들었기에 잔뜩 기대하고 이 장면을 기다렸다. 드디어 소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소는 혼자 눈물을 흘렸다. 클로즈업 쇼트로 독립된'소의 눈물'은 어떤 풍경도, 어떤 사람이나 생물도 그 눈물의 상황적 진정성을 확보해 주지 못했다. 마치 영화 개론 책에 나오는 쿨레쇼프 효과처럼 감독은 연관된 쇼트들의 병치를 통해 소의 눈물을 팔려 가는 것을 슬퍼하는 눈물로 만들고 있다.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허구적 비약을 이끌어낼 소지가 있는 편집은 배제했어야 한다. 더구나 그 쇼트의 내용이 사람의 눈물처럼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소의 눈물 같은 아주 특수한 것이라면, 그것은 편집에 의해서가 아니라 쇼트 자체의 힘으로 증명됐어야 한다.소를 흥정하다가 결국은 팔지 않고 돌아오는 우시장 장면에서도 뭔가 엄정하게 보여야 할 사실적 장면들은 몇 가지 시각적 효과와 사운드 효과에 가려져 있다.

마지막 소의 죽음 이후에 감동적인 음악과 함께 쌓아 놓은 장작이 보이는 장면도 소의 희생을 과도하게 관객에게 주입하려는 연출의 개입처럼 보인다. 영화 내내 끊임없이 들리는 할머니의 설명적 말소리는 그것과 화면이 충돌하면서 나타나는 해학성에는 기여하지만 모든 장면에서 관객이 해석할 여지 를 앗아간다. 저예산 영화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과잉된 음악도 다큐적 엄정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특유의 '중립적 응시' 포기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처럼 보이는 노인의 삶과 소의 삶의 병치, 그리고 기계 노동과 생명 노동의 반복적인 대조를 보이는 것에서는 성공한다. 그러나 노동 자체의 가치나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 등으로 깊어지지 못하는 것은 다큐멘터리 특유의 중립적 응시의 시선을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역시 채집한 현실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가공해서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그 자체로 현실은아니다.

그 조각들은 반드시 사실이어야 하고 그 가공의 방법은 조각의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화학적 방식은 아니고 철저히 물리적 방식이어야 하는 것이다. 전설의 다큐멘터리 감독 로버트 플래허티도 스스로 할 일을 현실을 새로 발견하는게아니고그현실 위에 덮여 있는 약간의 먼지를 불어 날리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육상효 인하대 교수 ·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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