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민법 강의실. 지각생이 허다한 보통의 대학 강의실과 달리, 강의 시작 30분 전부터 수강생 절반 이상이 출석해 있었다. 정장에서 캐주얼까지 나이대별로 다양한 옷차림을 한 학생들은 수업 준비를 하거나 주말 스터디 계획을 의논하느라 바빴다.
매매 계약법을 주제로 한 이날 강의는 활발한 문답식 수업으로 이뤄졌다. 지원림 교수는 강단에 서자마자 한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약관규제법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학생은 자신있게 대답했지만, 교수는 거듭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한층 명료한 답변을 이끌어냈다. 각 조항마다 교수는 관련 판례를 제시했고, 학생들은 미리 예습해온 자료를 참고하며 질문에 기민하게 답했다.
한 수강생은 "법대 3, 4학년 때 배우는 과정을 한 학기에 압축해 배우는 만큼 과제량이 엄청나다"며 "다들 준비를 철저히 해와서 수업이 밀도 있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4년여 사회적 논의와 준비를 거쳐 전국 25개 대학에 문을 연 로스쿨이 개원 한 달을 맞았다. 45년간 지속돼온 사법시험 체제를 깨고 '교육 양성'을 통해 다변화 사회에 걸맞은 법조인을 배출한다는 취지인 만큼, 새내기 학생 2,000명과 교수진의 의욕은 대단하다.
로스쿨 학생은 3년 동안 총 94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학기마다 5과목 이상 들어야 할 만큼 강도 높은 과정이다. 첫 학기라서 학생 대부분은 헌법, 민법, 형법 등 기본법을 필수 과목으로 수강하고 있다. 기존 법대에도 개설된 과목이지만, 교수들은 이론과 판례를 결합한 토론식 강의로 변화를 주고 있다.
학교별로 50~80% 가량인 비(非)법대 출신과 법대 출신 간 수준 차이로 수업이 파행을 겪으리란 우려는 현장 분위기와 거리가 있었다. 증권업계에서 일하다가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한 김모(29)씨는 "개원 전 두 달 간 예비 수업을 받았고, 법 지식보다 판례를 위주로 수업이 진행돼 법대 출신에 비해 특별히 불리한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인턴십 프로그램 등 실무 수업은 내년에 본격 시작되지만 일부 학교에선 일찍부터 현장 능력을 기르는 강의를 마련했다. 이화여대는 판ㆍ검사 출신 교수들이 소장 접수부터 변론까지 재판의 전 과정을 실습시키는 '모의재판' 과목을 개설,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공부하는 자세도 적극적이다. 연세대 로스쿨에 다니는 이모(26)씨는 "공익이론, 상거래법 등 전문법을 심도 있게 공부하려는 학회가 벌써 꾸려졌다. 이공계 출신들도 전공과 연계된 전문법 학회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고려대에선 20여 개의 스터디가 결성됐고, 비법대 출신들은 기존 법학대학원생들에게 '과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준비 부족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서울의 한 로스쿨 재학생은 "강의는 판례 중심의 영미법 체계로 바뀌었지만 교재 개발이 안돼 사법시험 수험서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의 한 교수도 "1년 반 동안 로스쿨 출범을 준비했지만 여전히 학부 때와 다름없는 수업을 하는 교수들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경력 5년 이상의 실무 교수를 20% 이상 채용하도록 한 로스쿨법을 두고 한 학생은 "고액 연봉을 받는 실력파 변호사들을 대학에 데려올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냉소했다.
무엇보다 로스쿨 출신에게만 응시기회를 주는 것을 골자로 한 변호사시험법안이 2월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이후 로스쿨에선 앞일에 대한 긴장과 불안이 감지된다.
카이스트 출신의 한 로스쿨생은 "적지 않은 등록금을 지불하고 진로를 바꿔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입장에서 지금 상황이 너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서울대 모 교수는 "진로가 불투명하다 보니 로스쿨생 중 은밀히 사법시험 준비를 병행하는 이들이 있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국회 법사위 산하 '법조인력양성 제도개선 특별소위'에서 1일 비 로스쿨 출신에게도 응시기회를 주는 예비시험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나, 본회의 통과 전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고려대 로스쿨 학생회장 천하람(23)씨는 "로스쿨 교육이 정상화되려면 높은 합격률이 보장되고, 법조인보다는 대학교수 위주로 시험 출제관리단이 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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