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탐색도 콜게이트(치약)도 없었다.'
주요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에서 국제 외교무대 데뷔전을 갖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을 놓고 하는 말이다.
8년 전인 2001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만남을 가진 뒤 "영혼이 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가족 별장이 있는 메인주에서는 함께 낚시를 하고, 흑해에서는 러시아 민요에 맞춰 춤도 췄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첫 회담을 한 뒤에는 "우리 둘이 똑같이 콜게이트 치약을 쓰고 있다는 공통점을 찾았다"고 했다.
이후 부시의 외교스타일은 등 토닥거리고 어깨를 감싸 안는 '버디 디플로머시(buddy diplomacy)'로 불렸다. 부시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친한 친구(buddy)처럼 스스럼없이 대한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그러나 이 평가는 내용은 없는 겉치레와 과장, 가식 외교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마치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이게 하는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에 런던으로 향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이런 스타일을 철저히 반면교사로 삼았다. 수행한 백악관 고위 관리들은 "이해관계에 근거해 의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이견이 있는 것도 강조하겠다. 친구 관계를 부각시키는 것은 이번 회의의 목적이 아니다"라고 해 노골적으로 부시와는 다른 외교를 하겠다고 표명했다. 또 다른 관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신중한 오바마(no-drama Obama)'라는 별명처럼 "보다 공식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등 '빅3'와 연쇄 회담한 오바마 대통령의 1일 외교행보는 외교라기보다는 비즈니스에 가까웠다. 오바마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핵감축 협상 재개, 러시아 방문 등 굵직한 합의 사항을 내놓으면서도 '그 이상의 선'은 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러시아측의 반응도 좋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좋은 관계인 듯한 환상을 만들지 않은, 상호 신뢰의 분위기였다. 우리는 이를 매우 기다려왔다"며 "개인적인 관계로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부시-푸틴 관계가 요란한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신냉전'이라 불릴 만큼 전후 최악의 관계에 빠진 것을 빗댄 말이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 유일한 혈맹인 브라운 영국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비즈니스 외교는 계속됐다.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갖고 싶다"며 먼저 손을 내민 것은 후 주석과 브라운 총리였다.
인터넷 정치매체인 폴리티코는 오바마 대통령이 "상징과 내용에서 지난 8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며 '부시의 외교가 끝났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브라운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으려고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일방적이고 군림하려 했던 부시 정권의 오만함을 버리고 '협력의 외교'를 하겠다는 것으로 미 언론들은 해석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