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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53> 미국의 언론과 한국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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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53> 미국의 언론과 한국의 언론

입력
2009.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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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오래 전부터 "You can not beat the barrel of ink." 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큰 통에 들어있는 잉크를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이 말의 뜻은 무한정 글을 쓸 수 있는 언론을 상대로 싸워 봤자 본전도 뽑지 못한다는 얘기다.

하원의원 시절, 나는 기자들과 좋게 지내면 기사가 좋게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앞에서는 웃고 친절한 것 같아도 뒤로는 뒤통수를 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쁜 백인 여기자가 더 무섭다.

내 말을 액면 그대로 기사화하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자기 의견을 넣어 기사를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치명적인 것은 앞뒤 맥락을 거두절미한 글이다. 한 번은 불우 학생들을 돕는 단체에 100 달러를 기부하면서 "내가 부자라면 100 달러가 아니라 1,000 달러를 기부하고 싶지만, 안타깝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다음 날 신문에 "김 의원이 앞으로 1,000 달러씩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고 보도됐다. '내가 부자라면'이라고 말한 전제 부분은 빼버리고 1,000 달러를 기부하겠다는 말만 보도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가 나간 뒤 여러 자선단체들로부터 1,000 달러씩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전화로 따졌더니 그 이튿날 신문에는 " 김 의원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발뺌했다"면서, 기자가 없는 말을 지어냈겠느냐는 식의 기사가 실렸다. 이쯤 되면 그만 접어야지, 따지면 따질수록 나만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괘씸하지만 참아야 했다.

언론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단 한번도 승소한 적이 없다. 언론자유는 미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고의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그런 기사를 썼다는 증거가 없으면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고의로 썼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대체로 반 공화당 성향이다. 그 중에서도 뉴욕타임스나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특히 더해서, 이들 진보 성향의 두 언론은 항상 공화당을 공격할 빌미를 찾고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하고, 텔레비전 방송은 CBS를 조심하라는 충고를 공화당 동료들이 종종 얘기해 주었다.

진보 성향 언론의 관점에서는 공화당은 돈 많은 부유층과 기업인들을 대표하는 당으로, 항상 특수계층에게만 혜택을 주는 백인 정당이라고 본다는 얘기다.

진보란 말이 나온 김에 진보와 보수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고 싶다. 한국에 초청받아 몇 차례 대학생들과 토론한 기회를 통해 놀란 것은 많은 젊은 층들이 반미, 친북 경향이 뚜렷하고 이를 진보세력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한미관계를 중시하고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퍼주기 정치를 경고하면서 북한의 참혹한 인권탄압을 지적하면 이를 '보수 꼴통'이라고 불렀다.

5년마다 국민의 손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제도를 부정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또 그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북한의 제도가 더 좋으냐고 물으면 나를 한 가지만 보는 전형적인 친미 보수로 몰면서 젊은 층을 이해 못한다고 오히려 공격한다.

이상한 것은 미국의 거대 언론들은 진보 성향이 뚜렷한 반면 한국의 대형 언론들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또 미국의 언론들은 공격할 때 대개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반면, 한국의 언론들은 그래도 인정사정 없이 공격하는 기사는 피하려는 노력이 역력히 보인다.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은 기자들의 취재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이 사건을 백일천하에 드러내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퓰리처상을 탔을 뿐만 아니라 단번에 유명인사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이후 미국의 기자들은 하나같이 이전의 사실 보도 위주의 스타일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탐정으로 변했다. 언론은 조그만 문제도 크게 확대하는 인기주의로 쏠렸다. 그러다 보니 언론들은 독자를 흥분시킬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사냥을 다니는 굶주린 늑대와 다르지 않게 됐다.

나는 미국 의회 역사상 첫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었다. 언론들은 거의 매일 나를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상징으로 영웅처럼 취급했다.

훨씬 뒤에 이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영웅으로 치켜 올린 다음에 끌어내리는 기사가 더욱 흥미진진하고 독자도 많아진다는 것이 다른 선배 의원들의 충고였다. 그러면서 내게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최초의 역사를 만들면서 미국의 연방의원이 된 나는 하늘이 무서운 줄 몰랐고,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인기가 절정일 때 무엇보다 언론을 조심하라는 동료들의 말이 귀에 들어 올 리 없었고 오히려 귀찮을 정도였다.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의 예도 바로 그 것이었다. 최고로 인기가 올라갔을 때 그를 낙마시킨 것은 역시 기자들의 '끈질긴 파헤치기' 였다.

기자들은 한번 냄새를 맡으면 한꺼번에 수백명이 몰려들어 이미 쓰러진 희생물에서 한 조각이라도 더 물어가려고 야단치는 소용돌이 속에 몰입한다. 늑장을 부리면 좋은 기사는 모두 빼앗기고 잘못하면 자기 목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전쟁'에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상대가 완전히 손을 들 때까지 계속 물고 늘어진다.

나도 결국 당선된 지 8개월만에 이 덫에 걸려 버렸다. 그 때부터 나는 고난의 의정생활을 하면서도 기적적으로 3 차례나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돌이켜보면 쓰러지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된다. 그 것을 보면 나도 독한 놈 같다. 악착같이 버티는 한국사람의 피가 내 몸 속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최근에는 한국 언론들과의 접촉이 많아졌고 한국 기자들을 만나는 기회도 많아졌다. 인정사정 없이 웃으면서 뒤통수를 치는 미국의 기자들에게 오래 시달려온 내게는 한국 언론이 신기하기만 하다.

가령, 내 자신이 지나친 표현을 했어도 기자들에게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 보도하지 않는다. 특히 가끔 한국어 표현이 서툴러 적절하게 표현을 못해도 기사를 읽어보면 기자들이 표현을 고쳐줘 내가 말한 것보다 내용을 더 멋지게 전달해 주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이는 미국 언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언론은 취재원이 말한 그대로 기사는 쓰되 가급적이면 앞뒤를 빼고 자극적인 말만 골라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대해 불평해도 소용이 없다. 자칫 실수로 말을 잘못해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 오히려 부탁한 내용까지 보도한다. 그야말로 인정사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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