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강원 태백시 원동의 '하늘꿈자람터' 공부방. 날이 풀리며 화창해진다는 청명(淸明)이 닷새 앞이건만, 공부방 마당에는 눈발이 날렸다. 하늘꿈자람터는 담 너머 미동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 후 학교이자 놀이터다. 학원은 꿈도 꿀 수 없는 산골인 탓에, 전교생 26명 중 10여명은 학교가 끝나면 이 공부방에서 공부를 하고 끼니를 해결한다.
이곳은 해발 800m 고지대라 일년 내내 난방을 해야 한다. "보일러 안틀면 정말로 입이 돌아가요. 연탄값이 겨울엔 한 달에 20만원, 여름에도 10만원쯤 들지요." 자비를 들여 3년째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경 목사는 난방비 부담에 한숨을 푹푹 쉬었다. 비용을 줄여보려고 태양열과 풍력 보일러도 알아봤지만, 각각 일조량 부족과 소음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김 목사 부부는 이날 내린 눈을 서설(瑞雪)인양 반겼다. 연료비 덜 드는 우드펠릿 보일러를 무료로 들여놓는 날이기 때문이다.
트럭에 보일러를 싣고 나타난 귀한 손님들은 함께일하는재단과 정선ㆍ영월ㆍ삼척ㆍ태백의 지역자활센터가 손잡고 만든 '신재생에너지사업단'의 단원들. 사업단은 저소득층 가정과 공부방 등에 우드펠릿 보일러를 무료로 보급하는 사업을 통해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에너지 복지, 환경 보전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드펠릿은 폐목재를 톱밥으로 만들어 수분을 빼고 압축한 것으로, 이를 보일러 연료로 쓰면 온실가스를 연탄보일러의 절반으로 줄일 수 있고, 비용도 최대 20% 절감된다.
남색 점퍼를 맞춰 입은 단원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도 다양하고, 살아온 이력도 달랐다.
"저요? 예전엔 잘 나가는 광부였죠. 20년간 탄광에서 일하며 관리도 했어요." 능숙한 솜씨로 연통을 재단하는 이모(62)씨는 6년 전까지만 해도 도계의 대형 탄광에서 일했다고 했다. 폐광이 늘면서 강원 지역에 하나 남은 탄광이었다. 평생을 막장에서 보냈지만 나이가 들자 퇴출을 피할 수 없었다.
탄광을 떠나 막노동판을 떠돌았지만 역시 나이가 문제였다. 국민연금 50만원으로 근근히 버티다 지난해 12월 자활센터 소개로 사업단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 겨울엔 2, 3일씩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 바빴다는 그는 "돈 없는 것보다 일할 수 있는데 일하지 못하는 괴로움이 더 크다"면서 "일 할 수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퇴출 광부, 고랭지 농사를 짓다 실패한 농민, 빚만 남은 영세 자영업자 등 9명의 단원 모두 저마다 아픈 사연을 지녔다. 현재 벌이는 자활급여 76만원이 전부지만, 내년 초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면 노동부 지원금 90만원에 수익금까지 나눠가질 수 있다.
'팀장'으로 통하는 최승주(41)씨는 주점 운영, 자동차 정비, 중장비 운전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3년 전 고냉지 배추 농사를 짓다가 실패해 4,000만원의 빚을 졌다. 그 후 굴삭기 운전으로 한 달에 250만원까지 벌었지만, 쉬는 날도 없이 일하다 건강을 잃었다.
그는 "적게 벌어도 어려운 사람 돕고 환경도 살리며 일하니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드펠릿 공장을 운영하는 게 꿈이에요. 그 날을 위해 보일러 설치 가정에 순찰도 부지런히 돌고, 새벽에도 고장 난 보일러 고치러 달려갑니다."
박모(34)씨의 목표는 보일러 설치와 수리를 담당하는 보급소 사장님 되는 것. 이를 위해 보일러취급기능사, 배관기능사 등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단원들은 보일러 설치 보조만 하고 있는데, 올 여름 정식교육 과정을 밟아 자격증을 딸 계획이다.
오후 5시 작업이 끝났다. 마지막 배관 연결이 끝나고 전원을 켜자, 지하실 밖 연통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성공이다.
김 목사는 뽀얀 김이 오르는 라면을 끓여 내왔다. 모두들 뚝딱 그릇을 비웠다. 사업단의 막내 김모(28)씨는 "이렇게 간식까지 얻어먹는 경우는 흔치 않다. 추운데 떨며 작업한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김 목사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만성 신부전증에 시달리면서 매일 다섯번 씩 연탄을 갈고 버리는 것도 고달픈 일이었다. "앞으론 일주일에 두 번만 지하실로 내려가면 되고, 눈길에 연탄차가 끊길 걱정 하지 않아도 되니 감사해요." 그는 귀한 손님들을 태운 트럭이 사라질 때까지 마당을 떠나지 못했다.
태백=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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