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최대 재벌 발렌베리 그룹은 후계자들이 해군장교 복무와 자력 해외유학을 하지 못하면 경영권을 승계하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가풍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은 무거운 세금을 피해 해외로 나갔지만, 이 그룹은 끝까지 남아 세금을 내고 일자리도 유지했다. 수익금은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거쳐 선친들의 이름을 딴 크누트앤앨리스발렌베리재단, 마리앤느앤마쿠스발렌베리재단 등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이 돈이 스웨덴 과학기술과 스톡홀름경제대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데 종자돈이 됐다.
▦발렌베리 가문이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면서도 국민의 존경을 받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임) 실천에 힘쓴 덕분이다. 2세들은 군에 입대해 국토 수호에 앞장서고, 오너들도 부의 사회환원과 왕성한 공익사업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사회민주적 특성이 강한 스웨덴에서 발렌베리 그룹이 창업 150년, 5대에 걸쳐 장수한 바탕은 부를 과시하지 않는 청부(淸富)사상이다. 국내 재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미흡한 상태에서 부를 세습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만큼 국민적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재벌 오너들이 부쩍 친정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두산은 고 박두병 회장의 4남 박용현 회장을 지주회사인 ㈜두산 회장으로 추대하고,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등 다른 형제들도 등기이사로 선임했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으로 2선 퇴진과 외국인 전문경영인 체제를 겪은 뒤 오너경영으로 복귀한 것이다. 폭행사건으로 물러났던 김승연 한화회장도 주력사 대표이사를 맡아 지배력을 강화했다. SK글로벌 분식회계사건으로 자숙해온 최재원 SK가스 부회장도 SK㈜ 등 주력사 이사에 선임돼 형 최태원 회장과 형제경영체제를 갖췄다. 새우깡 쥐머리사건의 농심 오너부자도 돌아왔다.
▦오너의 경영복귀는 위기를 맞아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기업의 '야수적 본능'이 실종됐다는 지적을 받는 상황에서 대주주의 친정체제 강화는 기업가정신을 부활시켜 투자 불씨를 살리는 견인차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오너가 경영 전면에 나선다면 전문경영인과 마찰을 빚고, 잘못된 경영으로 몰락을 자초할 수 있다. 발렌베리 가문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앞장서 국민적 사랑을 받을 것인지, 부도덕하고 무능한 오너를 간택해 모두를 힘들게 할 것인지는 주주들이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할 일이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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