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막다시피 한 지하철 환기구 위를 지날 때면 마릴린 먼로가 떠오른다. 그녀의 비극적인 삶과 의문투성이인 죽음에 쓸쓸해진다. 영화 '7년 만의 외출'에는 누구나 다 아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지하철 환기구 위에 선 마릴린 먼로가 바람에 날리며 부풀어오르는 흰 원피스의 치맛자락을 아슬아슬하게 누르는 장면인데 이 독톡한 포즈가 마릴린 먼로의 포즈라 불릴 만큼 유명해졌다.
치마보다는 바지를 특히 청바지를 선호하게 된 뒤로는 이런 걱정에서 벗어났지만 한때 출퇴근길 나를 괴롭히던 것이 바로 바람과 치마였다. 그곳을 지날 때면 별안간 돌풍이 불곤 했다.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종이들이 날리고 일제히 여자들의 머리카락과 치마들이 날아오른다. 폭 넓은 치마가 유행이었던 해에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조금 더 바람이 셌다면 우리들은 한 5센티쯤 공중부양했을는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쩔쩔맸다. 신이 난 건 남자들이었다. 드러내놓고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웃음을 참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테니 남자들에게도 힘든 골목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야 그 비밀이 밝혀졌다. '빌딩숲 돌풍'이 원인이란다. 초고층 빌딩의 증가로 일어난 현상이란다. 아무튼 남자들은 그 골목을 마릴린 먼로의 골목이라 불렀고 은근히 짓궂은 돌풍이 더 불기를 바랐다. 변화 없는 일상의 청량제였다나.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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