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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3> 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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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3> 여독

입력
2009.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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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독

김경주

처음으로 내 발의 색을 묻는 여자가 있었고 처음으로 입에 담배를 물려 준 여자가 있습니다

집에 들어와 머리를 감다가 누군가 마지막으로 따뜻한 물에 머리를 감겨 달라던 시제가 떠오릅니다 그건 진티엔에서 밍티엔까지 기차의 침대칸에 누워 창밖으로 엄마가 이륙한 날을 떠올리던 날, 눈동자가 물색이 되어 가는 눈병에 걸린 누나가 자신의 별에 두고 온 문을 잔 속에 넣고 흔들던 시간, 발착에서 도착까지 내가 만든 내륙이 멍드는 일입니다

누군가 죽은 내 머리칼을 닦아 주는 순간에 떠오를 시제는 색깔을 처음 배우던 느낌, 새들의 피로 그린 지도 속에서 날아다니는 연을 쫓다가, 단 몇 초간 바라본 시야가 한 사람의 유적이 될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 밤에 각획선을 타고 가 보았던 나루터에선 빨래가 가장 아름다운 깃털처럼 흔들리고 혁명은 물속에서 욕조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다가 잠들고 싶은 시제입니다 이 별이 바위를 운행하는 별이라 다행입니다 그 별에서의 이별은 밤마다 한 눈이 다른 한쪽 눈을 구출하는 시간이어서 더욱 다행이고

이과두주海에서 공부가주海로 페리가 객차들을 싣고 건너옵니다 한 별이 유적이 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유족의 눈이 추측되어야 하는 건가요 얼마나 많은 유골에 불을 피워야 이 행성은 판독이 되는 걸까요? 색깔을 처음 배우던 느낌으로, 뜨거운 모래 속에 두 발을 넣고 있는 느낌으로, 누군가의 머리를 감겨 주는 느낌으로, 이질(異質)의 시제에서만 투숙하는 백야가 되겠습니다 멀리서 이 별의 혈액을 흔들며 내 몸에 자욱한 당신에게, 씁니다 입안의 모래가

슬프다. 머리카락은 주인이 죽은 후에도 살아있는 풀처럼 자라네. 이 행성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이의 운명도 그렇구나. 육신이 긴 여행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면, 우주는 폐허가 된 우리를 그의 유적으로 가질 거야. 시간도 감정도 없는 텅 빈 그곳에, 한 때 기뻤고 또 애통했던 한 인간의 역사가 주인 없이 심겨진 풀처럼 기록될 거야.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김경주 1976년 생. 2004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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