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발견됐다. 최응천 동국대박물관장은 31일 "금속공예 연구차 중국을 방문했다가 28일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박물관에서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대 한반도의 것으로 보이는 불상이 중국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최 관장이 확인한 금동불은 21㎝ 높이에 대좌는 물론 불신과 광배까지 완벽한 상태로, 광배에는 10개의 진주가 박혀있다. 이 불상은 중국 당국이 1982년 닝보시 천봉탑(天封塔)의 지하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남송시대 불상, 은제 향로 등 140여점의 사리공양품과 함께 출토된 것이다.
최근 보존처리를 끝내고 올해 1월 닝보시박물관 개관과 함께 상설 전시되기 시작했는데, 현지에서는 남송시대 아미타불상으로 소개되고 있다. 함께 수습된 유물에 남송 소흥(紹興) 14년(1144년)에 제작됐다는 명문이 있었던데다, 발견 당시 푸른 녹이 끼어 있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존처리가 끝난 현재 이 불상은 전형적인 8세기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최 관장의 설명이다. 최 관장은 "정교한 눈매와 코 등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의 모습도 그렇고, Y자 형태로 갈라져 흘러내린 옷주름을 볼 때 통일신라의 것이 확실하다"면서 "갸름한 얼굴 형태로 볼 때 9세기로 가기 이전의 양식"이라고 말했다.
국내 불상 중 진주가 장식된 것은 아직 확인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최 관장은 "광배가 남아있는 것 자체가 거의 없어서 그럴 뿐 보석이 박힌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는 있다"면서 "향후 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관장은 "닝보가 장보고의 주요 활동무대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중국과 통일신라의 교류가 특히 많았던 장보고 시대에 중국 사찰에 봉안된 불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불상연구자인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도 사진자료를 검토한 뒤 "제작 연대는 8세기가 아닌 9세기 초로 볼 수도 있지만, 통일신라에서 제작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특히 이 불상이 의미를 갖는 것은 통일신라가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중국에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관장은 "통일신라의 불상이 당대 가장 귀한 작품들을 넣는 탑 안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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